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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서진희 이메일 newway919@gmail.com
작성일 2015-09-18 조회수 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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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북한과 중국 사이, 철조망 세워진 이유는…

 

북한과 중국 사이, 철조망 세워진 이유는

[국경을 걷다, 2015] 북한으로 들어가는 길 막은 중국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 2015.09.17. 10:27:22

 

 

 

수풍댐의 위용을 가까이서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지안(集安) 으로 향했다. 잘 닦여진 도로를 달리면서, 중국이 동북 3성의 인프라 투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2009년 중국 정부는 지린(吉林)성 지역 발전 전략을 발표하면서 북-중 접경 지역의 개발을 본격화했다. 이후 북-중 접경 지역의 철도와 항만 등 인프라 투자가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변방 구석구석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새 길이 열리고 있었다.

 

지안에서 고구려 유적을 답사한 후, 우리는 지안 시내에 있는 북한 식당 '묘향산'에서 점심을 먹었다. 북한 식당은 중국 식당에 비해 가격이 비싸 중국인들에게도 대중적인 식당은 아니라고 한다. 그들에게도 북한 음식을 먹고 공연을 보는 것은 특별한 날에나 가능해 보였다.

 

이 식당에는 지안 바로 건너편 지역인 북한의 강계에서 온 젊은 여성들이 접대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어색한 듯 미소 짓는 젊은 북한 여성의 표정에서 쑥스러움과 호기심을 읽을 수 있었다. 통역 없이 시원시원하게 같은 언어로 소통하니 식사 시간이 유난히 즐거웠다.

 

식사 후 우리는 북한의 만포(滿浦)로 통하는 철교가 있는 곳으로 갔다. '만포'란 지명은 압록강을 오가는 배들이 가득(滿) 몰리는 포구(浦口)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3년 전 나는 지안과 만포를 연결하는 약 200미터 되는 철로 위를 걸어 북-중 국경선이 그려진 앞까지 갔었다. 이번에도 그 같은 기대를 갖고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우리 일행은 외국인이란 신분 때문에 표 사는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출입조차 거절당한 것이다.

 

지안은 단둥(丹東)과 함께 한국 전쟁 때 중공군(중국인민지원군)이 북한에 들어간 의미 있는 지역이다. 단둥의 펑더화이(彭德懷, 당시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동상 밑에는 19501019일에 중공군이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3년 전 봤던 지안과 만포를 잇는 철교 앞 비석에는 "19501011일 중국인민지원군 선발대가 비밀리에 이곳(지안)을 통해 가장 먼저 조선에 들어갔다"고 적혀 있었다. 중공의 한국 전쟁 참전이 사전에 비밀리에 이뤄졌다는 것을 실토한 기록이 지안에서 만포로 건너가는 철교 시작점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는 그곳을 갈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입구에서 철교까지 길을 따라 세워놓은 벽면의 사진들과 설명문도 볼 수 없었다. 1950년 이래 북-중 간에 있었던 우호적인 주요 사건들, 그리고 3년 전까지 중국 지안시와 북한 만포시 사이에 관광 협력이 합의됐다는 점 등을 설명해 놓은 벽면이 통째로 온데간데 없어지고 회색 칠이 되어 있었다. -중 관계, 남북 관계, -중 관계에서의 의미 있는 장소를 앞으로는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다.

 

65년 전의 혈맹 관계가 일반적인 국가 관계로 변화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중국인들에게 예전에 설명해 오던 북-중 관계만으로는 현재의 북-중 관계를 이해시킬 수 없어서 인지는 그 속을 알 수 없다. 다만 이런 변화도 양국 간에 갈등은 다소 있지만 기본적으로 우호에 기반을 둔 현 북-중 관계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철교를 떠났다.

 

한편, 지안을 떠나 다음 목적지로 가는 동안, 동북 3성에서의 도로 신설 등 인프라 확충에 박차를 가하는 중국이 접경 지역 북한 쪽 구간 접근에 대해 통제를 강화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3년 전에는 어떤 다리든, 노란 선을 그어 놓은 중간 지점까지 어떤 제재도 받지 않고 걸어갔다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답사에서 우리는 중간 지점은 고사하고 다리 초입도 접근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또 민감한 지역으로의 진입 지점에는 반드시 중국 공안의 검문이 있었다.

 

국경을 철저히 통제하는 모습을 보며, 최근 탈북자 수가 줄어든 이유 중 하나가 국경에서 중국 당국의 감시가 강화됐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압록강보다 탈북자의 탈출이 용이한 두만강 전 지역은 3년에 걸쳐 철조망 공사를 다시 했다고 한다. 달리는 차창 너머엔 3년 전에 없던 장소에 국경 철조망이 새롭게 설치되어 있었다.

 

이런 변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중국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환구시보(環球時報)>"현재의 북-중 관계는 비교적 미묘하지만 양국이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고 평가했다. 관광객들이 북한을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다리나 철교 접근을 북한의 요청에 의해서 중국이 통제하는 것일까? 예컨대 관광객들이 북한 쪽 가까이 다가와서 사진 찍고 떠들썩하게 북한주민에게 말이라도 거는 것이 북한의 입장에서는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접경 지역에서의 북-중 관계가 3년 전과는 달리 최근에는 다른 분야에서도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관계로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았다. 랴오닝(遼寧), 지린성, 헤이룽장(黑龍江)성 등 동북 3성에 대한 중국 정부의 투자가 '미묘한' -중 관계의 현실을 반영하듯 최근 약간 더디게 진행되는 측면도 있지만, 그래도 북-중 관계는 '통제 가능한 범위'내에서 일단 '진행 중'임을 알 수 있었다.

 

이번 답사 기간 동안 접경 지역에서 북-중을 잇는 다리들을 보면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에도 관심이 깊어졌다. 이유는 이 정책이 중국의 서북 변경 지역 개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중국 전문가인 이창주 박사는 "중국이 북한에 투자하는 것은 북한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한국이나 동해로 그들의 인프라를 연결하는 경우까지를 염두에 둔 것이다"라고 기고문에서 밝힌 바 있다. 이 박사의 말대로 시진핑의 일대일로가 한국까지 포함된 것이라 치더라도, 우리로서는 그 이전에 북-중 경협이 어느 수준까지 진전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북-중 간 경제 관계의 심화는 남북 관계 개선과 발전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되는 보고서들은 중국과 북한이 정치적으로는 다소 멀어졌지만 경제적으로는 밀착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중국의 대()북한 직접 투자 금액이 20031000만 달러에서 201359000만 달러로 급증했고, 중국이 북-중 접경 지역에서 추진하는 인프라 개발이 총 12건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중 교역 총액은 2010347000만 달러에서 2014686000만 달러로 5년간 연평균 18.6%씩 증가했다. 이같은 수치로 우리는 북한의 대중국 무역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대북 투자 증대와 북-중 접경 지역의 인프라 확충, 북한의 대중 무역 의존도 심화라는 현상들이 반갑지만은 않다. 우리가 차지해야 할 자리를 중국이 차지하고, 그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 내심 못마땅하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 결국 이것이 우리의 남북 관계나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강변을 따라 달리는 동안 이 같은 내용이 사실임은 접경 지역 곳곳에서 확인된다. 신의주의 신압록강대교를 비롯한 다리와 철교, 그 위를 오가는 트럭들, 중국인의 자본으로 가동되는 수풍댐 근처 공장 등. 중국 성 정부나 현 정부 차원의 투자와 민간 투자가 활성화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남북 간에는 7·4 공동 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 선언, 10·4 정상 선언 등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 관계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남북 정상급 합의들이 있다. 최근에는 이 같은 합의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만을 장식하고 있는 듯하다. -중 관계를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려면 이 같은 합의들이 다시 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남북 간에 평화가 정착되고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북한에 들어가고, 남한 주도의 국제 컨소시엄으로 남북한을 잇는 인프라를 구축해 나간다면, 현재 '정지된 듯 정지된 것이 아닌' -중 관계를 하등 우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해양과 대륙을 있는 한반도의 지리경제학적 가치를 한껏 살리는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이 남한의 주도로 가능해진다면, 요사이 자주 듣는 '통일'도 요원한 꿈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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