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마당


칼럼/논문

이름 서진희 이메일 newway919@gmail.com
작성일 2015-09-12 조회수 485
파일첨부
제목
뜬구름 위 박근혜, 어서 땅으로 내려오시길…

 

뜬구름 위 박근혜, 어서 땅으로 내려오시길

9.19 공동성명 10주년 특별기획(1)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2015.09.11. 09:39:43

 

 

 

오는 919일은 2005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채택된 지 10년째가 되는 날이다. 6자회담이 7년 가까이 산소마스크를 낀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9.19 공동성명도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성명에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뿐만 아니라 동북아 평화안보체제의 필요성도 담겨 있다.

 

그런데 오늘날 북핵 능력과 정전체제의 불안정성이 날로 가중되고 있고 동북아에서 신냉전의 기운도 커지고 있다. 9.19 공동성명을 창조적으로 부활시켜야 하는 절박함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5차례에 걸쳐 한반도와 핵무기의 미래를 진단하면서 9.19 공동성명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플루토늄을 먹고 살 수는 없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주도했던 네오콘들이 즐겨 쓴 표현이다. 2002년 연말에 북미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자, 북한은 이듬해 1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를 선언하곤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자 네오콘들은 핵문제 재발을 북한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로 인식했다. 이들은 "북한 정권이 주민들은 굶주리는데, 플루토늄 생산에만 몰두하고 있다",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불렀던 자신들의 대북관을 정당화시켰다. 그들의 눈에는 굶주리는 북한 주민이 인도적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부수적 피해'로 비춰진 것이다.

 

이에 따라 생각해낸 방식이 '국제사회 대() 북한'의 대립 구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핵문제는 북·미 간의 문제라며 직접 담판하자는 북한의 요구를 일축하면서 다자회담의 틀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나온 것이 바로 6자회담이다. 51 구도를 만들어 북한을 제재하고 압박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6자회담은 네오콘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한국, 중국, 러시아는 북한의 핵 개발 못지않게 미국의 일방주의적 대북강경책도 견제하려고 했다. 이에 따라 6자회담은 북핵 대응 못지않게 미국의 대북강경책에 대한 완충 역할까지 수행하게 됐다. 동시에 네오콘이 제국의 꿈을 안고 감행했던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수렁이 되면서 네오콘의 대북정책 주도력도 눈에 띄게 약화됐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바로 9.19 공동성명이었다. 네오콘의 위세가 약해진 것을 틈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수석대표를 중심으로 외교 라인이 본격 가동된 것이다. 기실 9.19 공동성명은 역설을 품고 있다. 일방주의의 화신으로 불렸던 부시 행정부 때 동북아 역사상 최초로 다자간 안보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네오콘의 대북정책의 핵심은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난에 시달리던 북한을 무너뜨리고 한미동맹 주도로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북핵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 방법이라고도 여겼다. 그러나 이건 망상으로 끝났다. 네오콘의 기획이 기승을 부릴수록 북한은 핵무장을 "체제 보위를 위한 만능의 보검"으로 여겼다. 이 사이에 이라크 전쟁은 '네오콘의 무덤'이 되었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부시 대통령은 라이스 장관과 힐 수석대표에게 대북정책의 전권을 위임했다. 그 결과 2007~2008년 북·미관계는 1999~2000년에 이어 제2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불렀던 부시가 그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 것이 대표적이다.

 

되살아난 망상

 

그러나 안타깝게도 네오콘의 망상은 한국 정부에서 되살아나고 말았다. 2008년 등장한 이명박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라인에는 네오콘의 대북관과 너무나도 흡사한 생각을 품고 있었던 인사들이 대거 포진했다. 이를 빗대 필자는 '백악관에서 쫓겨난 네오콘이 청와대로 취직했다'고 풍자하곤 한다.

 

지금은 어떤가? 박근혜 대통령은 94일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말했다. "북핵 문제나 이런 것을 해결하는 가장 궁극적이고 확실한 어쩌면 가장 빠른 방법도 평화통일이다". 그러면서 "(중국과) 가능한 조속한 시일 내에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뤄갈 것인가에 대해서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9일에도 "한반도 통일은 북핵 문제와 인권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필자는 이 발언을 접하고 한숨 짙은 탄식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박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돌고서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인식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조속한 통일"은 국내 진보 진영뿐만 아니라 보수 진영 일각에서도 비현실적이고 위험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러한 비판에 특유의 아집으로 응수하고 있다.

 

둘째는 '8.25 합의'에도 불구하고 대북 인식이나 메시지 관리에 별다른 진화를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흡수통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은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셋째는 이 발언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의 정상회담 직후에 나온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조속한 통일"을 강조했지만, 시 주석은 "자주적 통일"을 지지한다고 했다. '조속한''자주적'은 천양지차이다. '조속한'이라는 표현 속에는 중국 등 주변국의 지지와 협력을 받아 통일을 이룬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정작 북한이 빠져 있다. 반면 '자주적'에는 통일문제는 남북한이 알아서 풀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설마 아직도?

 

필자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점은 이것이다. '혹시 박근혜 정부가 북핵 문제를 통일의 호기로 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우이길 바라지만,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징후는 이미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정부 내에선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나 4차 핵실험을 북한을 붕괴시킬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 인식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일례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작년 4"만약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그것은 전체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며 "북한이 현재의 길을 고집한다면 그 길의 끝이 무엇인지 역사가 가르쳐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작년 5월에도 "북한이 또 다른 도발을 할 경우, 국제사회는 더 이상 북한 문제로 불안에 시달리지 않도록 강력한 제재를 시행해야 한다""이 문제를 완전히 종결할 정도의 수준이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710일 열린 통일준비위원회에서 "내년에라도 통일이 될 수 있다"고 발언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김정은의 공포정치로 인해 북한 내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는 인식을 내비친 바 있다. 이에 더해 북한이 10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전후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면 국제사회와 함께 강력한 대북 제재와 압박에 나서 북한의 종말을 앞당길 수 있다는 인식이 '내년 통일' 발언으로 나온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뜬구름 위에서 내려와야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없는 통일은 맹목이자 망상 그 자체이다. 설사 북한 내부의 불안정과 외부의 압박이 맞물려 북한이 붕괴 위기에 처하더라도 통일 시도는 대재앙을 잉태할 수밖에 없다. 다른 건 젖혀두더라도 무력 흡수통일 시도는 '거대한 버섯구름'을 수반할 위험이 대단히 크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쓴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부분은 또 있다. 정부는 줄곧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이루면서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해왔다. 8.25 합의 이후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자, '속도조절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잊을만하면 갑자기 '조속한 통일론'이 전면에 부상하곤 한다. 남북관계가 최악이었던 2013년을 찍고 대통령의 일성으로 나온 것이 바로 '통일대박론'이었다. 꼬일 대로 꼬인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정책이 전무한 상태에서 말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8.25 합의를 기회로 남북관계의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는 요구를 청와대는 '속도조절론'으로 차단하면서 대통령은 '통일 세일즈'에 여념이 없다.

 

부디 바라건대, 박근혜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한반도 문제를 뜬구름 위에서 보지 말고, 땅 위에서 살피고 바라봐야 한다. 그 땅이 험하고 거칠지라도 그 땅을 피하고선 한걸음에 나아갈 수 없는 게 바로 한반도 문제의 속성이다.

 

남측 정부에서 흡수통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북측은 '핵 억제력'에 더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다. 이게 20여 년간 핵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한반도 드라마의 핵심적인 교훈이다. 모처럼 반전을 선보인 남북관계가 또다시 막장으로 치달아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이전글 "김정은 만세"에서 "산림애호"…달라지는 북한?
다음글 박근혜 '드레스덴 구상', 현실로 옮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