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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서진희 이메일 newway919@gmail.com
작성일 2015-08-17 조회수 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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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조국 이름에 대한 제언

 

통일조국 이름에 대한 제언

겨레글은 고리’, 로마자는 ‘Gori’로 하자

 

오인동 | tongil@tongilnews.com

 

 

 

오늘 2015년은 조국이 일본의 강점에서 해방되며 남북으로 분단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1945년 해방 정국에서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남은 1948815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99일 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라는 우리글과 로마자 이름의 두 정부로 갈라섰다.

 

남북은 3년 동안의 전쟁을 1953년 정전한 뒤 60여년 반목 대립해 왔다. 그런데 1910년부터 35년 동안은 나라 이름조차 잃어 버렸었으니 우리 겨레는 한 나라 이름으로 살아보지 못한지도 105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어코 자주적으로 화해, 협력, 교류, 왕래하는 과정을 거쳐 통일을 이뤄낼 것이다.

 

앞으로 대한조선이 통일조국의 이름을 결정하게 될 때 서로 자신의 것을 채택하려 할 것이다. 그러니 둘 중 하나에 동의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1960년 북이 북남조선련방제를 제안한 데 이어 1980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제안했다. 남은 1989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내놓고 이어 1994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제안했다.

 

북과 남이 처음에는 각기 자신의 정부 이름을 썼으나 그 뒤에는 서로 이름을 내세우지 않은 것은 통일조국의 이름은 남북이 합의해 결정해야 한다는 배려에서였을 것이다. 오늘의 남북 관계로 보아 통일의 날은 가깝지 않아 보이나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통일조국의 이름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 필연이다.

 

통일조국의 이름에 대한 제언들

 

1997, 통일의 여명이 밝아 오리라는 희망에서 재미동포통일연구회 ‘Korea-2000’ 위원들과 작성한 남북 지도자에 드리는 통일정책 건의서19981, 서울에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평양에서는 김정일 총비서에게 전했다.(1) 그때 통일 과정에서 써야 할 국호, 국기, 국가에 대한 나의 글도 함께 전했다. 그 글에서 로마자 국호는 남과 북이 같이 쓰고 있는 ‘Korea’로 하고, 동의하기 쉽지 않을 우리 겨레글로는 잠정적으로 '코리아'로 쓰자고 제언했다.(2)

 

그로부터 2년 뒤 20006.15남북공동선언이 나왔고 조국은 통일의 길로 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2002년 남녘 월드컵 축구경기장에 물결치던 ‘Corea’ 깃발을 보고 서양인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써온 로마자 이름들에 대해 연구했다.(3) 그리고 뒤에 설명하는 대로 2003년에는 로마자 이름은 ‘Corea’로 우리글로는 꼬레아로 쓰자고 제언했다.(4)

 

2008년부터 남한에 보수 정부가 들어서자 6.15남북공동선언이 무력화 되고 통일의 길은 멀어져만 가는 것을 보며 내가 제언했던 통일국호에 대해 돌이켜 보게 되었다. ‘Korea-코리아‘Corea-꼬레아를 제언했을 때도 통일을 이루게 되는 날, 우리글 나라 이름은 전 민족성원의 뜻을 모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통일조국의 이름을 임시방편적으로 로마자 이름 위주로만 추구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우리글 이름을 코리아, 꼬레아로 하자고 한 것이 무척 마음에 걸렸다. 즉 겨레글 이름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그에 대한 반성과 후회 또한 커져 왔다. 그래서 통일조국의 이름은 우리 선조의 나라들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곧 조국의 로마자 이름의 어원 연구 과정에서 알게 되었던 高句麗高麗사람들은 고구려고려가 아니고 우리 겨레말 고구리고리로 발음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5) 그리하여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갈 통일조국의 우리말 겨레글 이름을 고리로 하면 어떨까, 그리고 로마자 이름도 고리를 정확하게 표음할 새 이름을 생각해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高麗의 발음은 고리’, 高句麗高麗로 바꿨다

 

고리(高麗)’는 옛 조선(朝鮮)에 이어 우리 겨레의 선조 추모가 기원 전 37년에 세운 나라 고구리(高句麗)’에서 비롯되었다. 그 뒤 국토와 국력을 크게 신장한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은 423년경부터 국명(國名)고리(高麗)’로 바꾸고 427년 평양으로 천도했다. 이 고리왕조는 668년에 끝났고 918년에 왕건이 새 나라를 세우며 옛 고리(高麗)’ 왕조의 이름을 계승해 썼다.

 

이렇게 우리 겨레 역사에 두 고리왕조가 있었는데 고구려가 고리로 이름을 바꾼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1145년 왕건 고리(高麗)의 김부식 등이 한문(漢文)으로 편찬한 정사 <삼국사기>高麗 대신 대부분 高句麗로 썼기 때문이다(高句麗: 879, 高麗: 47). 이로 인해 현세의 역사책에도 고구려(高句麗)로 쓰였고 역사 수업에서도 고구려로 가르쳐 왔던 것이다. 반면 1281-3년 승려 일연이 쓴 야사 <삼국유사>에는 高句麗8, 高麗74번으로 올바르게 썼다. 그리고 중국의 여러 역사서에도 개명된 뒤에는 高麗(고리)’로 쓰여있다.(6)

 

그런데 여기서 더 안타까운 것은 高句麗高麗로 이름을 바꾼 우리 겨레말 발음이 고구리’, ‘고리인 것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조국의 남과 북에서는 선조들의 나라를 고구려, 고려라고 잘못 발음하고 우리글로도 틀리게 쓰고 있다. 여기에도 이유는 있다. 우리 겨레의 은 있었으나 정립된 글자가 조선(朝鮮)왕조 전에는 없어서 우리 겨레의 역사는 한자(漢字)’로 쓰였다. 그래서 겨레말 고구리에 가장 가까운 한자 高句麗로 표음해 썼다. 즉 우리 선조들은 한자로 표기된 高句麗高麗를 우리 겨레말 고구리, 고리로 발음해 왔다.

 

이 사실은 1446년 우리 겨레글 훈민정음을 창제한 조선의 세종대왕에 의해서도 밝혀져 있다. 겨레글 반포 다음 해에 간행한 용비어천가에 바로 전 왕조의 한자 이름 高麗를 읽는 법을 주()에 우리글과 한문으로 적어 넣었다.(7)

 

麗運ᄒᆞ거든 나라 ᄒᆞᆯ 맛ᄃᆞ시릴 ᄊᆞ [高麗의 운이 다 되었으므로 (이성계가) 나라를 맡으시려 할 때]”에 한문으로 단 주에 麗音裏高麗也자의 소리는 ’()이니 고리(高麗)를 말한다고 썼고, 太祖姓王氏名建 (태조의 성은 왕 씨이고 이름은 건이다)”고 했다.

 

조선왕조의 국서에 高麗는 겨레말로 고리로 발음한다고 쓰여 있으니 더 논란할 일도 없다. 한편 高句麗(고구리高麗(고리)를 계승한 왕건 高麗(고리)의 역사 500년 동안에 국명의 발음에 대한 기록은 아직 보지 못했다. 1200년 역사의 겨레말을 써온 두 고리왕조가 자신의 나라 이름은 입으로 전해져 온 대로 말해왔을 터이니 굳이 高麗의 발성법을 남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高麗(고리) 초기 조정의 서희 열전에 방증적 기록은 있다.

 

993년 거란(=)의 소손녕이 쳐들어오자 내사시랑 서희가 중군사로 전장에 나가서 소손녕에게, “我國卽高句麗之舊地, 故號高麗都平壤 ("우리나라가 바로 高句麗의 옛 땅이요. 그러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高麗라고 하였고, 평양에 도읍했다)"라는 논리적인 외교 담판으로 물리친 적이 있다. 이 기록은 추모의 高句麗à高麗를 이어 받은 나라가 왕건의 高麗라는 것을 설득한 것이기에 그 발음도 선대의 고구리’, ‘고리였다는 해석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8) 이에 더해 이웃 중국의 사서(史書)에 나라 이름 高麗의 발성법에 대한 기록이 있고 서양세계에서는 방증적 사료(史料)도 많다.

 

高麗의 중국·일본 발음과 서양인의 표음

 

高麗자 발음에 대한 기록이 왕건 고리시대 송()나라 왕약흠의 [책부원귀(冊府 元龜)](1013), [신당서(新唐書)](1060), 사마광의 [자치통감(資治通監)](1084) 등의 사서에 는 나라 이름 高句麗高麗의 경우 가 아니라 로 읽는다고 되어있다. 즉 중국인들은 高句麗高麗 시대에도 로 발음했고 현세에도 로 발음하고 있다.(9)

 

이렇게 로 발음한다는 방증은 서양의 고문서에도 있다. 십자군 전쟁 시기 몽골제국과의 동맹을 목적으로 수도사 루브룩(G. Rubruck)이 프랑스 왕 루이 9세의 특사로 몽골로 갔다. 수도 카라코룸 궁정에서 뭉게칸을 만났을 때 高麗사신들을 본 그가 1255<몽골제국여행기>중국의 동쪽 물 건너에 ‘Caule’가 있다고 썼다. 다음은 원()나라에서 오래 머물렀던 이탈리아인 폴로(M. Polo)1295년 귀국하고 발간한 <동방견문록>에 쿠빌라이칸이 반란을 평정한 뒤 대칸에 복속한 4지역 이름 중 하나가 Cauli”이었다고 썼다. 두 서양인이표기한 ’Caule, Cauli’는 중국인들이 高麗가우리로 발음하는 것을 듣고 표음한 것이다. 로 발음한 것이다.(10)

 

그러나 高麗가우’(cau)로 표음한 것은 어째서인가. 高句麗연구회 서길수에 의하면 한자(漢字)의 옛 소리를 다룬 [한자고금어휘]에 중국인은 를 상고음에서는 고(ko), 고대음에서는 가우(kau), 근현대 만다린어에서는 가오(kao)로 발음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高句麗자 발음은 기원 전 700년경부터 남북조시대가 수()나라에 의해 통일된 500년대 말까지 쓰인 상고음에 해당된다. 그래서 ’(ko)로 발음한다, 그러나 루브룩과 폴로의 1200년대는 고대음 시기여서 가우’(Cau) 가우리로 표음된 것이다. 근현대 가오발음의 ‘Caoli’ 1674년 샹송의 <아시아지도>에 처음 나왔다.(11)

 

高麗자 발음의 근거를 방증하는 또 다른 예는 한자를 겸용하는 일본에서도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인 1500년대 중 후반에 일본에 도착한 서양인들이 우리나라를 ’Coray, Corai’ 등으로 표음했다. 즉 일본인들은 高麗로 발음하고, ‘라이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중국에서는 를 시기에 따라 다르게 발음했지만 우리 겨레는 왕건의 高麗때에도 1천여 년 구전되어온 고구리고리발해의 겨레말을 따라 고리로 발음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로부터 200여년 뒤 고리에 대한 더 의미 깊은 표기들이 서양인들에 의해 나타났다.

 

Gores, Gori, Core고리사람들인가?

 

1400년대 말 포르투갈인이 배로 아프리카 남단을 넘어 인도와 말라카해협을 지나 동쪽으로 향해 가던 때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표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는 고리에 이어 조선왕조가 시작된 지 100여년 뒤였다. 처음 나온 표기는 말라카 왕국에 포로로 잡힌 아라우오(R.Araujo)1510년 포르투갈의 인도 총독 알부케르케(A. Albuquerque)에 보낸 편지에 “Gores들이 말라카에서 무역활동을 하고 있다고 썼다.

 

1512년 인도·말라카 약재무역 책임자 피레스(T.Pires)<동양요록(SemaOrientale)>무역활동을 하는 ‘Gores’는 류큐에 사는 사람들이다라고 했다.(12) 우리나라 남단과 그리 멀지도 않은 류큐는 일본과 대만 사이의 여러 섬들을 말한다. 북의 학자 장영남은 1513년 포르투갈 왕이 로마 교황 레오 10세에 보낸 편지에 “Gores 상인단이 류큐에서 말라카로 오곤 했다고도 썼다.(13) 포르투갈어에서 ‘Gores’‘Gore’의 복수인 ‘Gore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1514년 이탈리인 엠폴리(G. Empoli)의 편지에 북쪽으로 가면 ‘Cini, Lechi(류큐), Gori’라는 중국지역이 있다고 썼다. 1517년 피레스가 중국 대사가 되어 광동에 갔을 때“Luchuans(류큐인들), Guores, Japanese를 만났다고도 썼다. 여기서 ‘Guores’는 앞에 나온 ‘Gores’의 다른 표기이지 다른 이름은 아니다. 그러면 1510년대 초에 반복되어 나온 Gore(s)Gori의 발음은 고리이다.

 

그 뒤 1549, 일본으로 가던 토레스(C.Torres)와 란칠로토(N. Lancilloto) 신부는 일본인들은 중국의 동쪽에 있는 ‘Coree’ 사람들과 교역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썼다. ‘Coree’의 발음도 코리이니 그 미지의 나라는 고리와 같은 발음이다. 그러면 이들이 고리인들이나 그 후예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남의 정성화는 1557년 알브케르케의 아들(B.Albuquerque)이 발간한 <논평(Commentario)>에도 “Gores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 사람들이다고 썼다.(14) 이러한 기록들에 의하면 Gore, Gori, Coree 상인들은 류큐에 사는 사람들이지만 류큐의 원주민들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어서 1571년 포르투갈인 두라도(F.Dourado)<동양해도>우리나라가 ‘Core’로 처음 표기되었다.

 

같은 해 일본 가톨릭 교구의 빌렐라(G. Vilela) 신부가 예수회 보하 총장에 보낸 편지에 ChjnaJapan 사이에 있는 ‘Corea’라고 불리는 다른 왕국이라고 또 처음 표기했다. 그리고 1578년 이탈리아 신부 프레네스티노(Prenestino)‘Coria’로 표기했다. 여기서 라틴계 언어에서 명사 끝에 접미사 ‘a’를 붙이면 여성이나 나라 이름이 된다. 즉 모어인 ‘Core’“Cori”‘a’가 접미사로 붙어서 ‘Corea’, ‘Coria’라는 나라 이름으로 표기한 것이다. 고리고리아’, ‘코리아’(Coria, Corea)라는 나라로 표기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표기들이 1500년대 후반에 고리’(高麗)를 일컫는 ‘Corea’로 귀결되어 오늘에 이르렀다.(15)

 

‘Gori’고리의 정확한 표음이었다

 

그러면 이 Gori, Gore는 정말 고리(高麗) 사람들이었는지 좀 더 생각해 보자. 1200년대에 서양인이 모르던 나라 고리(高麗)’를 중국인의 발음을 따라 Caule, Cauli로 표음했다. 그런데 중국의 고대음이나 근현대음 시기인 1500년대에 이 미지의 나라를 서양인들이 CauliCaoli로 표기하지 않고 Gore, Gori, Coree, Core 같은 고리발음으로 표음한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첫째, 이런 표기들은 중국인들의 발음을 따른 것이 아니다. 둘째, 말라카 지역 주위에 고리와 비슷한 이름의 나라는 없다. 셋째, 이 표기들은 1500년대 후반에 Corea로 정착되어 고리를 이르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넷째, 그래서 이 지역에 진출해 무역을 해온 고리인들로부터 듣고 그렇게 썼다고 본다. 앞의 일본인의 ‘Corai’처럼 나라가 조선으로 바뀌었다 해도 오랜 역사의 고리로 볼 때 자신들은 고리인이라고 했을 것이다. 다섯째, 그 뒤 서양인들이 중국 남부에 도착해서 고리가 조선으로 바뀐 것을 알게 되자 다시 중국인 발음을 따라 표음해 쓰기 시작했다.

 

1578년에 처음 스페인의 중국 사절단장 라다(M. Rada)조선의 중국식 발음인‘Chausien’으로 표음했다. 1596년 네델란드인 랑그렌의 <동인도 지도>Corea2차적 이름으로 일본식 발음을 따른 ‘Tiauxen’, 1598년 정유재란 때 일본에 들려 조선인 포로 5명을 데리고 여행한 카를레티(F. Carletti)는 일본과 우리말 발음에 가까운 ‘Cioscien’, 1653년 조선에 표착해 13년 살고 탈출한 하멜의 표류기에는 ‘Tiocenkouk(죠선국)‘ 으로 표기했다.

 

그 뒤 1600년대에 들어서서 포르투갈 출신 로드리게스(T.J. Rodrigues) 신부는 1577년 일본에 도착한 뒤 1620년대에는 중국에도 거주하며 집필한 <일본교회사>에서 일본인들의 고리(高麗)’ 발음인 ……Corai 왕국은 중국사람들이 ‘Cauli’라 부르지만 Corai 사람들 자신은 ‘Core’라고 부른다고 쓴 것은 고리를 처음에 ‘Gore, Gori, Core’로 표기한 것이 곧 고리(高麗)’였다는 것이다.(16) 이러한 역사 기록을 되새겨 보니 내가 2000년대에 가졌던 의문에서 벗어났다. 1500년대 초의 ‘Gori’는 선대 왕조 고리의 정확한 로마자 표음이었다는 확신이다.

 

Corea로 정착된 350여년 뒤 Korea

 

서양인들이 고리350여 년 동안 ‘Corea’로 부르고 쓰던 중 ‘Korea’라는 표기도 나왔다. 그 맨 처음 기록은 제주도에 표착했던 네덜란드인 하멜(Hamel)1668년 탈출한 뒤 출간한 <스페르웨르호의 불운한 항해 표류기>에서였다. 원저에는 ‘Coeree’로 표기했으나 1671년 독일어 번역판에는 ‘Korea’로 표기되었다. 1734년 러시아의 키릴로프의 <러시아제국총도>‘Korea’로 처음 표기되었다. 독일은 우리나라를 ‘Korea’, 불어권에서는 ’Corée’로 쓴다.(17)

 

1800년대 후반에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가 조선에 밀어 닥치며 맺게 된 조약문서에 ‘Corea’가 쓰였다. 그러나 일본과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1905년의 일-미 비밀협정(가쓰라-태프트밀약)에는 대한‘Korea’로 쓰였다. 1910년 일본이 대한을 강제 병합하고 그 선언문을 세계 여러 나라에 통고하는 영역문에도 ‘Korea’로 썼다. 세계 2차 대전 뒤 미국의 득세로 영어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소련에 의해 해방되며 분단된 조국의 남북이 충돌한 전쟁은 Korean War였다. 돌이켜 보니 ‘Corea’로 표기되었던 350여 년 조국은 한 나라였다. ‘Korea’로 바뀌어 쓰이기 시작하며, 우리 겨레는 나라를 잃었고 지금도 남북은 반목 대립하며 분단의 수치스러운 ‘Korea’의 역사를 살고 있다.

 

그래서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Korea’의 역사는 청산하고 원조 격인 ‘Corea’를 되찾아 쓰자고 2003년 이래 제언했었다. ‘Corea’를 쓰기로 하면 현재 ‘Corea’로 쓰는 방대한 라틴어권과 ‘Corée’로 쓰는 불어권까지 ‘C’로 아우르는 장점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남한에서는 젊은이들이 ‘Corea 되찾기운동을 벌리기도 했다.(18)

 

조선시대 문헌과 근현대사전에 나온 高麗=고리

 

동서양과 우리나라의 이런 사료들로 보아 高麗고리로 발음했다는 것은 확연하다. 그러나 한문으로 쓰인 [삼강행실도]가 훈민정음 반포 35년 뒤 1481년부터 1700년대에 언해본(우리글 판)으로 중간되었는데 高句麗, 高麗고구려’, ‘고려로 쓰여있다. <용비어천가>에 쓰인 高麗고리발성법을 무색케 한다.

 

1517년 중국어 학습서 [번역노걸대언해]고려, 1677[박통사] 언해본에는 高麗'고렷'으로 썼다. 1797[오륜행실도]에는 고려로 썼지만 고려적이란 표기도 나온 것들이 놀랍다.(19) '고렷'이나 고려적(고려 때)’이라고 쓴 것은 우리 겨레가 관습적으로 고릿적(오랜 옛시절)’이라고 말한다. 즉 백성들 사이에서 오래 전부터 입으로 전해 내려온 말버릇이 옛날 나라 고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사대사상이 극심했던 사대부들은 훈민정음을 언문이라고 낮게 여기며 한문만이 오랜 동안 쓰였다. 그래서 조선시대 한자(漢字) 공부에 제일 많이 쓰인 <천자문(千字文)>자가 '빛날 려'로 읽는 경우인 金生麗水만 있고, <유합(類合)> 책에도 '나라 이름 리'로 읽는 경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高麗도 천자문과 유합에 나온 발음 를 따라 고려로 발음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이때까지 우리나라에 한문자전이나 옥편은 없어서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1770-1903년의 증보문헌비고에는 高麗는 평성 로 읽는 경우라고도 했다. 반면 같은 시기인 1716년 청()나라의 [강희자전]高麗, 高句麗고리’, ‘고구리로 읽게 되어있다. 드디어 1770년대 후반(정조)에 와서 우리나라 옥편의 시조인 [전운옥편 (全韻玉篇)]이 나왔는데 그 속에 동쪽나라 의 예로 高麗고리로 읽도록 명기되어 있다.(20)

 

그 뒤 1860년대 지리학자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도 高句麗로 읽으라는 주를 한문으로 달아 놓았다. 조선 왕조 후기에도 고리로 발음한다는 사료들이다. 1909년 지석영의 [자전석요]에는 나라 이름 리가 없지만 1915년 최남선의 [신자전]에는 고리나라(高麗東國)’라고 읽어야 한다고 밝혔다.

 

해방 뒤 1957년 남한의 한글학회 [큰사전]고구리라는 단어가 있고, 1966년 민중서림의 [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 초판, 1973년 이가원·장삼식의 [한자대전(漢字大典)], 1983년 태평양출판사의 [최신대옥편(最新大玉篇)], 1984[최신홍자옥편(最新弘字 玉篇)], 1984[명문한자대자전 (明文漢字大字典)], 1997년 민중서림의 [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을 포함한 현대의 자전들에 자는 로 읽는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나라 이름일 때는 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북의 겨레말 사전들을 본 것 가운데 나라 이름 高麗에 대해 고려외에 다르게 읽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 남측 한 학자의 말이다. 1700년대 이후 남한의 여러 자전에 고리로 읽고 발음 하도록 명기되어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남에서는 겨레말 자전이 가르치는 대로 따르지 않고 북에서도 고려로 말하고 또 쓰고 있다.

 

통일조국의 이름은 고리

 

이러한 역사어원학적 연구를 통해서 우리 선조들의 두 나라 이름인 추모의 고구리(高句麗)고리(高麗)’와 왕건의 고리(高麗)’를 오늘날 조국의 북이나 남에서나 올바르게 발음도 또 쓰지도 못해 왔다는 사실에 크게 당혹했다. 그러나 한편 우리 선조들이 2천 년 전, ‘고구리, 고리라는 겨레말로 나라이름을 정했다는 사실에 감동되어 더욱 친근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시기에 서방세계가 부르고 쓰는 로마자 이름의 발음을 따라 우리 겨레글로도 코리아’, ‘꼬레아로 쓰자고 제언했던 꺼림직함과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우리 겨레 역사에 뚜렷하게 존재했던 나라 이름들은 ()조선, 부여, 가야, 신라, 고구리고리, 백제, 발해, 고리, 조선 그리고 대한 등이다. 해방 뒤 조국의 남측은 상고사의 삼한(三韓)과 근대사의 대한(大韓)을 국명으로 채택했고, 북측 또한 우리 겨레의 상고사와 근대사의 나라 조선(朝鮮)을 국명으로 했다.

 

우리 선대 나라들의 역사를 보면 ()조선의 2300여년, 추모의 고구리고리가 신라, 백제와 함께한 700여년(BC 37-668), 신라와 발해의 남북조 230, 왕건의 고리 470여년(918-1392), 이성계의 조선이 500여년이었다. 그 중 크게 보아조선(朝鮮)’고리(高麗)’ 두 나라 이름이 우리 겨레의 역사를 대변해 온 셈이다.

 

돌이켜 보면, 중원의 패자 수·(·)과 북방의 패자 동이족의 후예 고구리고리가 맞서 동북아의 광대한 지역을 호령하던 선조들의 웅대한 얼에 대한 경외와 자부심이 치밀어 온다. 한편 신라가 외세 당을 끌어들여 백제를 짓밟고 광활한 고리의 영토를 당에 내어 준 것은 통일이라기보다는 우리 민족과 강토의 축소였다. 그나마 고리멸망 30년 뒤에 고리 사람 대조영은 당의 압력으로 발해라는 국명으로 건국하고도 당과 신라에 대립하며 고리의 재건을 표방한 역사였다고도 볼 수 있다.

 

신라 말기 사회의 혼란에 견훤이 후백제로 분기했고, 다음해 901년 궁예가 고리재건을 시도한 가운데 918년 왕건이 옛 고리의 얼을 이어 건국했다. 왕건은 발해가 멸망하자(926) 그 유민을 포용했고 후백제신라를 통합해서 936년에 열국시대를 마감하고 처음으로 우리 겨레와 나라의 자주통일을 이루었던 것이 바로 고리(高麗)’이다.

 

500년 뒤 1392년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며 명()나라에 물어서 얻은 국명 조선(朝鮮)1897대한(大韓)’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13년 만에 일본에 병합되었다. 그러고 보니 단군조선 이래 우리 겨레 역사의 대종은 추모-대조영-궁예-왕건에 이르는 4고리=高麗전통의 1400년이라 할 수도 있다. 오랜 세월 우리 겨레가 지켜온 홍익인간의 얼이 담겨 있는 역사와 철학과 문화를 이어온 고리유산을 더욱 승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겨레 역사의 고증과 성찰을 통해서 얻은 성과를 남북 민족성원 앞에 내 놓는다. 나라 이름조차 잃었던 35년 뒤에도 한 나라의 이름도 없이 지내온 105년이다. 앞으로 남북이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또 대한과 조선을 하나로 하는 통일조국의 날에 역사적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 겨레말, 겨레글 이름은 고리를 채택할 것을 겸허하게 제언한다.

 

근현대에 쓰인 조국의 로마자 이름들

 

이렇게 제언하니 로마자 이름도 고리에 걸 맞는 새 이름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역사상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도 또 1897대한으로 개명한 뒤에도 나라가 로마자 이름을 정해서 쓴 적이 없다. 1948년 남북에 서로 다른 정부를 수립 했을 때도 대한조선이라는 이름에 해당하는 로마자 이름을 지어 쓰지도 않았다. 그저 서양인들이 우리 선조의 나라 고리(高麗)를 처음부터 부르고 써온 ‘Corea’ 도 아니고 ‘Korea’를 똑같이 채택해 썼다.

 

조선이 서방세계와 처음 맺은 외교문서는 1882년의 조미수호통상조약(Treaty of Amity and Commerce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Corea)으로, 고리’Corea’가 쓰였다. 그러나 내용에는 “Kingdom of Chosen(조선왕국)”으로 썼다. 미국은 조선의 영문표기를 일본사람들이 써온 ‘Chosen’을 따라 썼다. 1883년 정부가 보빙사를 미국으로 파견할 때 ‘Tah-Chosun’“Minister Plenipotentiary and EnvoyExtraordinary, Corea(특명전권공사)”라고 써서 대조선정부와 국호는 ‘Corea’라는 정립되지 않은 상태를 보여주었다. 조약의 상대국들은 각기 자국의 선택으로 영국은 ‘Corea’, 독일은 ‘Korea’, 러시아는 ‘Koreya’로 썼다.(21)

 

1897년 조선 국왕 고종이 자주를 표방하며 청()의 연호를 버리고 우리 고유의 연호 광무(光武)‘를 쓰며 왕을 황제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1016일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바꿨다. 이 결정을 각국 공사관에 한문문서로 통고했다. 그러나 대한의 로마자 이름은 통고하지 않아서 미국은 ‘Taihan’, 영국은 ‘Daihan’, 독일은 ‘Tai Han(Gross Han)’으로 다르게 표기해 답신했다.

 

각국은 이런 표기와는 관계없이 전에 써온 대로 대한을 미국은 Korea, 영국은 Corea, 독일은 Korea, 프랑스는 Corée로 썼고 이에 대해 대한정부도 지적을 하지 않았다. 즉 로마자 이름을 정식으로 정한 적이 없었다.(22)

 

1910822대한국은 일본과 한일병합조약을 맺었는데 1446년 세종대왕의 겨레글

훈민정음을 반포한 이래 외교문서에 처음으로 한문이 아니고 한국문을 썼다. 일본은 일문으로 썼으나 영역문은 없다. 그런데 일본은 7일 뒤 <한국병합에 관한 선언>의 영역문에서 ‘Declaration as to the Annexationof Korea to the Empire of Japan’라고 썼다. 합병이래 일본은 대한조선으로 개칭하고 조선총독부(Government General of Chosen)’를 설치했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대한‘Corea’‘Korea’도 함께 잃어 버렸다. 19193.1항일투쟁 때 독립선언서는 ‘The Declaration of Korean Independence’라 썼다. 이어 중국에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영어 명칭은 상대국과 시기에 따라 ‘Provisional Government of Corea’ 또는 of the Republic of Korea’로 썼다.(23)

 

1948년 북위 38도선 이남에서는 ‘Republic of Korea’, 이북에서는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라는 로마자(영어) 이름의 두 정부가 출범했다. 1991UN에 가입한 남은 ROK, 북은 DPRK라는 약칭으로 불리고 또 쓰고 있는 오늘이다.

 

로마자 이름의 역사언어학적 고찰

 

서양인들이 처음으로 1500년대 초에 우리 선대의 나라 고리’(高麗)를 가장 가깝게 로마자로 표음해 쓴 단어는 ’Gori’이다. 그러나 통일조국의 로마자 이름은 역사적 성찰뿐 아니라 언어학적으로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겨레가 고리라고 발음하면 서양인들은 보통 ‘Gori’라고 표음해 쓰지 ‘Kori’라고 쓰지 않는다. 한편 라틴어계 민족의 경우 ‘Cori’라고 표음도 하지만 발음은 과 비슷한 소리로 들린다. 반대로 서양인들에게 ‘Gori’를 발음해 보라고 하면 우리 겨레가 발음하는 것과는 좀 다르지만 고리라는 발음이 우리에게 들려온다.

 

2005년 이래 남북은 공동으로 [겨레말 큰사전] 편찬 작업을 해 오고 있다. 사전의 성격상 남북의 로마자표기법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앞으로 이에 대해서도 공동작업으로 단일법이 마련되는 날을 기대한다.

 

현행 남북의 로마자 표기법에 의하면 단모음 는 남북이 로마자 ‘o’, ‘‘i‘로 적는다고 되어 있다. 자음의 경우 파열음 은 남에서는 ‘g, k‘, 북에서는 ‘k, g’로 적고, 유음(: 유성음) ‘‘r, l’로 적는다. 이 법칙에 따라 단어를 쓸 때 은 모음 앞에서 남은 로마자 g, 북에서는 k로 그러나 순수음역 표기 같은 경우에는 g로 적고, ‘은 모음 앞에서 ‘r’로 적는다.

 

예로 고사리를 외국인들의 발음을 위해 음역할 때 ‘gosari’로 적는다. 이런 예로 남에서 구리‘Guri’로 적는데 고유명사는 첫 글자를 대문자로 적는다. 이 표기법에 따르면 우리 겨레의 선대 나라 이름 고리는 남에서는 ’Gori’, 북에서는 ‘Kori’로 적겠지만 이런 순수음역 표기로 겨레말 발음에 가까운 표음인 ‘Gori’로 적을 수 있을 것이다.

 

음성학에 의하면, 우리 겨레말, 겨레글 은 안울림 소리(무성음)이다. 무성음은 목청(성대)을 울리지 않기 때문에 맑은소리(청음)이다. 그런데 로마자의 ‘g’는 목청(성대) 울리며 내는 유성음이기 때문에 맑지 않은 탁음이다. 한편 로마자 발음 ‘K’는 우리말 와 같은 무성음이어서 맑은소리이다. 그래서 ‘Gori’‘g’는 서양인들에게 유성음이고 탁음이지만 우리 발음 도 무성음이고 청음이다.

 

오늘날 우리 겨레에 유성음은 없다고 한다.‘고리‘Cori’“Kori’로 표기하면 코리로 들려온다. 나는 우리 겨레의 발음이 서양인들로부터 달라진 발음의 고유명사인 나라 이름으로 듣고 싶지 않다. 고리고리=Gori’로 듣고 싶다.

 

통일조국 고리의 로마자 이름은 ‘Gori‘

 

그런데 이 표기들 중 어느 하나를 택하더라도 라틴어의 특성에 따라 나라 이름 끝에 ‘a’를 붙여서 ‘Goria, Coria, Koria’ 로 쓰는 것에는 반대한다. 나라의 주인인 우리 겨레가 고리라고 두 글자로 말하는데 서양인들이 고리아. 꼬리아, 코리아라고 세 글자로 다르게 발음 하는 것을 우리 겨레가 불편하게 들어야 할 이유도 없다. 세계에는 라틴어계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가 라틴어 식 접미사 없이 나라 이름을 쓴다. 특히 나라 이름 같은 고유명사는 그 나라가 결정하고 선포한 데 따라 읽고 또 쓰는 것이 원칙이다.

 

남과 북 어느 쪽이 무력이나 흡수통일을 이룬다면 그 쪽의 이름을 따르게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평화로운 합의통일을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에 남북은 동의하고 있다. 그래서 조국 통일을 이루는 새 나라에 겨레글 이름을 채택해 쓰는데 논란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자 이름에 대해서는 이미 써온 Korea로 계속하자거나 원조 격인 Corea로 바꿔 쓰자는 의견도 나올 수 있다. 마찬가지로 겨레글로도 대한조선을 융합한 이름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고 관용어가 된 고려를 쓰자고도 함직하다. 그러나 우리가 새 겨레말 겨레글 이름을 정했으면 그에 걸 맞는 로마자 이름을 쓰는 것이 옳거나 바람직하다면 그렇게 하면 될 것이다.

 

오랜 세월 우리 겨레가 지켜온 홍익인간·재세이화의 얼이 담겨 있는 역사와 문화를 이어온 고리의 전통을 승화시키는 데에 남과 북은 동의할 수 있다고 이 재미동포는 믿는다. 그래서 통일을 이루는 조국의 로마자 이름은 겨레말 우리글 고리를 가장 가깝게 표음하는‘Gori’를 제언한다. 결정은 남북연합방시기에서 연방기를 거쳐 가는 과정에서(24) 남북 사계의 전문가들의 논의를 거쳐 합의 아래 결정하면 될 것이다.

 

분단 70년과 한 나라로서의 이름도 없이 살아온 우리 겨레의 부끄러운 105년을 맞으며 남북이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쓸 수 있는 또 대한조선을 하나로 하는 통일조국의 겨레말 겨레글 이름을 고리, 로마자로는 ‘Gori’를 제언한다. 온전한 새 나라의 찬란한 미래가 펼쳐질 우리나라 이름 고리- Gori’를 우리 후손 만대에 물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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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인동, <평양에 두고 온 수술가방>, 창비, 2010, 123-129

 

2) 오인동,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밖에서 본 한반도>, 솔문, 2010, 132-134

 

3) 오인동, <꼬레아 Corea, 코리아 Korea서양인이 부른 우리나라 국호의 역사>, 책과함께, 2008)

 

4) 오인동,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 319-324

 

5) 서길수, “高句麗高麗의 소리값에 관한 연구”, <고구려연구> 27, 2007

 

6) 서길수, “高句麗高麗의 나라 이름(國名)에 관한 연구”, <高句麗 渤海 硏究 第50>, 2014. 11

 

7) 오인동, <꼬레아 Corea, 코리아 Korea>, 62

 

8) 오인동, <꼬레아 Corea, 코리아 Korea>, 61

 

9) 서길수, <고구려연구집>

 

10) 오인동, <꼬레아 Corea, 코리아 Korea>, 35-45

 

11) 오인동, <꼬레아 Corea, 코리아 Korea>, 173, 238

 

12) 오인동, <꼬레아 Corea, 코리아 Korea>, 70-76

 

13) 장영남, <역사학 연합학술회의, 평양, 20021226

 

14) 정성화, “16세기 유럽 고서에 나타난 한국”, <역사학보> Vol.162, 1999).

 

15) 오인동, <꼬레아 Corea, 코리아 Korea>, 78

 

16) 오인동, <꼬레아 Corea, 코리아 Korea>, 80-87

 

17) 오인동. “초기 서양지도와 문헌에 나타난 우리나라 표시와 표기, 1317세기 사이의 동서양 사료”, <내일을 여는 역사> 2004년 겨울호

 

18) 오인동, “‘Corea’ 되찾아야 민족 주체성 회복동서양 사료로 본 Corea, Korea 연원”, 월간 <신동아> 200311월호 / 오인동, “통일국호는 Corea꼬레아로”, 계간 <역사비평> 2003년 겨울(65)

 

19) 서길수, <고구려연구집>

 

20) 서길수, <고구려연구집>

 

21) 오인동, <꼬레아 Corea, 코리아 Korea>, 186-192

 

22) 오인동, <꼬레아 Corea, 코리아 Korea>, 209-212

 

23) 오인동, <꼬레아 Corea, 코리아 Korea>, 230-234

 

24) 오인동,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의 꿈-남북연합방>, 다트앤, 2013, 157-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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