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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서진희 이메일 newway919@gmail.com
작성일 2015-04-26 조회수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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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대연정으로 위기 돌파하라!"
 
 
"박근혜 대통령, 대연정으로 위기 돌파하라!"
[정세현의 정세토크] 남북 관계, 양안 관계를 보라
 
이재호 기자2015.04.24. 15:22:39
 
 
 
최근 대만(타이완)을 다녀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중국과 대만이 과거의 갈등과 상처를 대규모의 인적 교류로 풀어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중국이 100만 발에 가까운 포탄을 대만 금문도에 떨어뜨렸는데, 이 포탄이 이제는 기념품인 식칼로 변했고, 이 기념품을 중국 관광객들이 구입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대만의 교류는 2008년에 들어와서야 본격화됐지만, 남북 간 교류는 이보다 10여 년 앞서 시작됐다. 하지만 2015년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남북 관계는 양안 관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절돼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남북 간에는 개성공단 임금 문제, 군사 훈련 등 긴장과 갈등을 유발하는 사안들만 산적해 있다.

당면한 과제인 개성공단 임금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당국 간 회담이 필요하다. 그런데 남북 간에는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북한이 대북 전단 문제와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의 이른바 '체제 통일' 관련 발언으로 인해 남한 당국과는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민간 조직인 개성공단관리위원회와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간 협의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하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 전 장관은 "완전한 해결로 가려면 2013년 8월 개성공단을 재가동하면서 합의했던 남북 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동위원회 역시 당국 간 회담이기 때문에, 이를 열려면 우선 대북 전단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면서 남북 당국 간 협의 채널을 열기 위한 전단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정 전 장관은 "홍용표 신임 통일부 장관이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안전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하던데, 통일부 장관이면 남북 관계를 중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런데 집권 3년 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는 남북 관계뿐만 아니라 외교, 내정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년이 된 지난 16일 예정돼있던 남미 순방길에 올랐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외국에 나가서 계약이라도 한 건 체결하고 오면 그것이 곧 애국이라고 생각하는 1970년대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그는 "중동에 간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중동 인력 수출은 박정희 대통령 때 한 일인데, 아버지가 했던 방식을 그대로 하면 제2의 산업화가 일어나고 창조 경제가 완성되나? 그때와는 시대가 너무 달라졌는데"라고 일갈했다.

정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 같다"면서 "북한을 상대하려면 중남미 국가를 상대하는 것과는 다른 노하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북한은 그들이 필요한 것 주고 우리가 필요한 것 받는, 소위 '등가의 교환'을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분단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남북 관계를 조금이라도 풀어나가려는 의지가 있다면 북한을 읽는 코드는 따로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이 정도고 원칙이라고 전제하고 대북 정책 구상을 내놓으면 남북관계 개선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는 지난 21일 서울 동교동에 위치한 김대중 도서관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이뤄졌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흔히 남북 관계와 비슷한 모습으로 중국과 대만, 즉 양안 관계를 꼽는 분들이 많은데요. 2008년 이후 중국과 대만이 매우 가까워지면서 양측을 비교하는 전문가들도 많아졌습니다. 2015년 현재도 여전히 양안 교류가 활발하다고 하는데요. 이번에 직접 대만에 다녀오셨다구요?

정세현 : 대만 외교부 초청으로 방문하게 됐습니다. 이번엔 금문도를 돌아보고 왔습니다. 금문도는 대만에서 중국과 맞닿아 있는 최전선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지난 1958년 8월 23일부터 44일 동안 중국으로부터 집중적인 포격을 받았습니다.

현장에서 가이드의 말을 들어보니 당시 중국 푸젠성(福建省)의 샤먼(廈門)으로부터 금문도로 날아온 포탄이 무려 48만 발이었다고 합니다. 중국은 첫날 9만 발을 쐈고 나머지 42일 동안 하루 평균 9000~1만 발 정도를 발사했습니다. 금문도 자체가 완전 초토화 된 겁니다. 이후에도 중국은 1978년 연말까지 간헐적으로 포격을 했는데, 금문도에 떨어진 총 포탄 수가 98만 발에 달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당시 중국은 포탄 안에 전단, 속칭 '삐라'를 넣어서 체제 선전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폭격 때문에 금문도에 있는 웬만한 시설은 전부 지하 요새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만으로부터 물자를 안전하게 들여오기 위해서 물이 통할 수 있게 V자 모양으로 터널과 비슷한 시설물을 만들 정도였습니다. 수송선이 대만에서 물건을 가지고 와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높이 4~5미터 정도의 깊고 넓은 터널을 만든 겁니다.

금문도에 이런 대규모 포격이 가해진 이유로 중국 내부의 정치 상황을 꼽을 수 있습니다. 1958년은 중국의 대약진 운동이 실패하면서 마오쩌둥(毛澤東)의 권력이 흔들리던 때입니다. 마오는 당시 국가 주석, 당 주석, 당 총서기 직책을 모두 맡고 있었는데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당 주석을 제외한 나머지 두 자리를 내놓았습니다. 중국 내의 정치권력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당시 중국 지도부는 관심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금문도 포격에 나선 것입니다. 이는 대외 정책이나 대외 군사 행동에서 국내 정치가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현상을 보여준 대표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워낙 많은 포탄이 금문도에 떨어지다보니, 아직도 이 잔해들이 금문도에서 발견된다고 합니다. 최근 대만은 발견한 포탄들을 녹여서 식칼로 만들고, 이걸 관광 상품으로 판매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 식칼을 금문도에 관광 오는 중국 사람들이 기념품으로 사 간다고 합니다. 대륙에서 넘어왔던 포탄이 식칼로 만들어져 다시 대륙으로 건너가는 상황이 된 겁니다.

이런 재밌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중국과 대만 사이에 상당히 빈번한 인적 교류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륙의 샤먼에서 금문도까지 배로 30분 거리인데 배가 수시로 드나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중국과 대만을 오가는 비행기가 일주일에 840편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비행기가 뜨다 보니 지난해 한 해 동안 대륙에서 대만을 다녀간 사람이 550만 명에 육박했습니다. 대만에서 대륙을 다녀간 사람은 300만 명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중국과 대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히고 있습니다. 대만 사람들이 중국에 투자한 곳도 많고, 만들어서 파는 물건도 상당합니다. 지난해 대만이 중국을 상대로 700억 달러의 무역 흑자를 냈을 정도였습니다.

중국과 대만의 이러한 모습을 통해 교류가 늘어나고 경협이 심화되면 군인들이 아무리 도발하고 싶어도 실제 행동까지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은 자국의 경제가 대만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물리적인 제압이나 강압을 하지 않고 대만을 관리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 양안 관계를 보면 남북 관계와는 정말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현재 남북 관계는 사실상 단절됐는데 말이죠.

정세현 :
사실 양안의 관계 개선은 우리보다 늦었습니다. 우리는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햇볕 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남북 경제 협력이 가속화됐었죠. 그러나 대만과 중국은 이보다 10년이 늦은 2008년, 대만에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집권하면서 비로소 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늦었지만 2015년 현재 양안 관계는 남북 관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습니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보면서 우리가 북한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는데도 시간과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98년 이후 10년 동안 가져왔던 관계 개선을 통해 남북이 서로 의존하면 북한이 군사적 위협을 거둘 수밖에 없다는 가능성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에는 북한의 총소리 한 번, 미사일 한 발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안보에 대한 불안감과 위기감만 높아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프레시안 : 인적 교류와 경제 교류로만 보면 중국과 대만이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것 같은데 정치·군사적 문제에서 갈등은 없나요? 대만 현 정권인 국민당이 아니라 민진당이 집권하면 지금과 같은 관계가 유지되기 힘들 것이라는 예측도 있는데요.

정세현 : 갈등의 소지가 있습니다. 일단 현재 상황부터 놓고 보자면 내년 1월 총통 선거에서 여당인 국민당이 당선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게다가 민진당은 중국과 관계에 있어서 국민당과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만과 중국은 별개라는 겁니다.


▲ 마잉주 대만 총통(가운데)이 지난해 12월 3일(현지시각) 타이베이의 국민당 당사에서 지방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집권 여당인 국민당 주석직에서 사퇴한다고 밝힌 뒤 머리를 숙이고 있다. ⓒAP=연합뉴스

국민당은 대륙 출신들이 세운 정당입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언젠가는 대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원래 대만 사람들은 중국이 필요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들은 청나라 때부터 중국 대륙에 버림받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나라가 들어선 직후 대만은 명나라 복원 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일종의 기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청나라 집권 이후 청 정부는 사민 정책을 통해 대만을 중국화시키고 싶어 했습니다. 이에 청나라는 대만 맞은편에 있던 푸젠성 사람들을 대거 대만으로 보냅니다. 이렇게 대만으로 보내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대만으로 쫓겨났다는 인식을 갖게 됐습니다. 여기에 청나라는 청일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해서 대만을 일본에 넘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역사가 있는데도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 패망한 이후 중국은 대만을 챙기기 시작합니다. 과거 청나라 시절 대만은 자신들의 영토였다며 자국으로 편입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죠. 여러 번 대륙으로부터 버림받았던 대만 사람들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습니다. "그동안 너희(중국)가 우리를 위해 해준 것이 뭐가 있다고 권리를 주장하냐"라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대만의 권력을 잡은 것은 대만 원주민이 아니라 이주민인 국민당 세력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중국이 싫은 원주민들은 불만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었겠죠. 그런데 여기에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사건까지 발생했습니다. 1947년에 일어난 2.28 사건입니다.

당시 2월 27일 타이페이(臺北) 역 근처에서 전매품인 담배를 몰래 팔고 있던 여성이 이주민 출신의 단속원에게 구타를 당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대만 원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했는데, 경찰은 군중을 향해 발포했고 결국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이에 원주민들은 28일 타이페이시 전역에서 항의 시위를 열기 시작했고 이 시위는 3월 1일 섬 전역으로 확대됐습니다. 위기를 느낀 국민당은 계엄령을 선포한 뒤 8일 대륙에서 진압군을 불러들여 대대적인 살육과 약탈을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원주민들이 사살당했고 정치 지도자와 경제인, 언론인 등도 희생됐습니다. 정부 발표로만 2만8000명 정도의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당시 희생을 당했던 그 후손들이 여전히 대만에 살고 있습니다. 국민당에 원한이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들은 국민당이 대륙을 수복하는데 "왜 우리 사람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우려고 하느냐"고 저항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만의 권력은 줄곧 국민당이 잡고 있었고, 중국과 관계도 조금씩 풀리면서 적대 의식도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92년 중국과 대만 사이에 '92공식(共識, 공동 인식)'이라는 합의가 나오면서 양국 간 긴장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는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와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 대표가 만나 합의한 것으로, 양측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자기가 중국을 대표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를 '일개 중국, 각자 표술', 줄여서 '일중각표'라고도 합니다.
대만보다 힘이 세고 대만과 밀접했던 주요 국가들과 수교를 하면서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아졌던 중국이 이러한 인식에 합의한 이유는 대만 독립주의자들의 주장을 일단 잠재우기 위함이었습니다. 대만에 너무 겁주지 않고 먹고 살게는 해주겠다는 중국 대륙의 정책에 대만 국민당도 일정 부분 이를 받아들이면서 양측 관계가 조금씩 개선됐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이 집권하면서 대륙과 대만 관계가 뜸해졌습니다. 하지만 2008년 국민당의 마잉주가 정권을 잡고 대륙과 관계에서 획기적인 정책을 쓰면서 중국과 관계를 재설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동안 국민당은 '3불(不)' 정책을 써왔는데요. 중국과 △접촉하지 않고 △대화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은 오직 타도의 대상일 뿐이라는 이야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마잉주 총통은 △통일하지 않고, △독립하지 않을테니 △중국도 자신들에게 무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새로운 3불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현상 유지하고 평화 협력하면서 잘 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이른바 '신(新) 3불 정책'이었습니다.

이에 기반을 두고 양안 간 활발한 교류가 가능해졌습니다. 그런데 내년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 후보가 당선되면 양안 관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불편해질 수 있죠. 또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불편한 양안 관계를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안보 측면에서 대만과 미국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양안 관계 저렇게 활발한데…남북 관계는?

프레시안 : 양안 관계는 남북 관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빈번한 인적 교류를 이어오고 있지만 외지인과 원주민의 정체성 차이로 인해 갈등의 소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남북은 이런 정체성 차이도 별로 없는데,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줄어들었던 남북 간 교류는 여전히 답보 상태입니다. 특히 5.24 조치 이후로 남북 교류는 찾아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정세현 : 남북 관계가 좋을 때는 하루 평균 평양 시내를 돌아다니는 남쪽 사람들이 300~400명 정도 됐었습니다. 그만큼 북한의 사회·문화에 남한이 미치는 영향이 컸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개성공단 임금 문제를 가지고 양측이 얼굴만 붉히고 있습니다.

중국과 대만 사이에 경협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평화가 뿌리내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개성공단도 북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단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지금보다 규모가 더 컸다면, 공단 생산력이 떨어져서 자신들이 안게 될 경제적 불이익이 크다고 생각했다면, 북한이 지금처럼 공단을 빌미로 남쪽을 압박하거나 위협할 생각을 했을까요? 박근혜 정부가 여기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일단 당면한 임금 문제부터 풀어야 하는데, 이거 풀려면 당국 간 회담을 해야 합니다. 일단 당국 간 회담을 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뒤에 2013년 8월 공단 중단 사태를 마무리하면서 재개하는 과정에서 합의했던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를 정식으로 열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 문제를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과 개성공단 관리위원회 간 협의로 풀려고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공동위원회에 응하지 않으니까 우회적인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인데, 완전한 해결로 가려면 당국 간 만나야 합니다. 민간 조직인 관리위가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 2013년 9월 17일,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된 지 160여 일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사진은 이날 오전 북한 개성시 봉동리 개성공단 SK어패럴에서 노동자들이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모습. ⓒ개성공동취재단

공동위원회도 당국 간 회담이기 때문에, 이를 열려면 우선 대북 전단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정부는 여전히 '표현의 자유'라며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홍용표 신임 통일부 장관이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안전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하던데, 고민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통일부 장관이면 남북 관계를 중심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남북 관계 풀려면 전단 문제를 비껴갈 수 없는 상황이 됐으니 이 부분에 대해 대통령을 설득해야 합니다. 표현의 자유, 국민의 안전 모두 대통령이 챙겨야 할 문제니까 당분간 전단 살포 중지시키겠다고 대통령에게 건의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 다른 목소리 냈던 진영, 유진룡 전 장관은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홍용표 장관이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저는 통일부 출신으로 장관을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미련이 없었습니다. 실무자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남북 협상에서도 북쪽이 벼랑 끝 전술을 썼을 때 더 강한 전략으로 대응한 적도 있습니다. 내일 물러나도 좋다는 생각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홍 신임 장관도 본인이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장관직에 임해야 합니다.

'총체적 난국'…박근혜, 모르는 것 너무 많아

프레시안 : 개성공단 문제뿐만 아니라 사실 남한이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는 상황입니다. 내정, 외치, 남북 관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는데요.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가 하는 행태를 보면 지도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세현 : 국내 정치가 이렇게 어려워지면, 즉 집안이 시끄러워지면 밖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남북 관계는 외교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치하고는 다르지 않습니까? 총리 문제가 됐든 여당 내 세력 다툼 문제가 됐든 간에 청와대가 힘이 빠지면 대외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 수 있는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원래 하던 일상적인 것만 하게 되는 겁니다.

하물며 남북 관계는 국내에서 확연하게 입장이 갈리는 사안입니다. 북한에 조금만 유화적인 이야기하면 '종북'이라고 하고, 또 반대편에서는 상대를 '보수 꼴통'이라고 폄하합니다. 이렇게 양극화돼 있는 상황이라 남북 관계를 풀기가 기본적으로 힘든데, 내부까지 혼란스러우니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가 남북 관계를 풀기 위한 동력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측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권 3년 차니까 정상 회담을 하든지 장관급 회담을 열어서 개성공단 문제 등등을 일괄적으로 풀어 보자라는 식의 제안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지지층까지 이탈하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움직이기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프레시안 : 세월호 1주기인 16일에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콜롬비아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서 계약을 따오는 것을 대단한 애국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 채 1970년대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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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중동에 간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중동 인력 수출은 박정희 대통령 때 한 일인데, 아버지가 했던 방식을 그대로 하면 제2의 산업화가 일어나고 창조 경제가 완성될까요? 그때와는 시대가 너무 달라졌는데 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북한을 상대하려면 중남미 국가를 상대하는 것과는 다른 노하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북한은 그들이 필요한 것 주고 우리가 필요한 것 받는, 소위 '등가의 교환'을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남과 북은 분단된 순간부터 민족사적 정통성을 놓고 아직도 치열한 기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남북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벌어져있고, 군사적으로도 핵과 미사일 때문에 표면적인 비교는 힘들지만, 북한은 전쟁 도발을 하면 그날로 지구상에서 없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북한이 먼저 전쟁을 치를 역량은 없습니다.

다만 북한은 계산이 빠릅니다. 1994년 6월 김일성 사망 직전, 미국은 협상으로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영변을 폭격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내용이 여기저기 보도되니까 바로 북한이 꼬리를 내렸습니다. 이후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방북을 계기로 북한은 남한과의 정상 회담 카드를 들고 나옵니다. 미국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구실을 만들고 빠져나간 겁니다.

70년 동안 신경전을 벌인 상대기 때문에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도와주겠다고 하는 것도 지양해야 합니다. 드레스덴 선언의 문제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 1998년 비료 회담 때 북측 전금철 단장이 말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시 우리는 북한에 비료 줄 테니, 이산가족 상봉 약속하라고 압박을 했습니다. 그러자 전 단장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정 선생, 주는 사람만 자존심 있는 거 아니요 받는 사람도 자존심 있소. 뭘 좀 주려면서 너무 그러지 마오"

북한의 이런 태도가 주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근데 사실 이건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열등의식입니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이른바 '대남 우월감'은 사실 열등의식과 동의어입니다. 이러한 양면성을 가진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이 고민을 치열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드레스덴 선언을 보면 이런 고민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북한이 경제적 약자이기 때문에 우리 제안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통일준비위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통일이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한 것이라면 북한 당국은 없어도 됩니다. 그런데 이것도 너무 안일한 생각입니다. 북한이 붕괴하면 대한민국 헌법의 권능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자동적으로 연장될까요? 주변 강대국인 중국, 미국, 러시아, 일본 등이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개입하려고 할 것입니다. 북한이 갑작스레 붕괴한다고 해도 대한민국 정부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상황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분단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남북 관계를 조금이라도 풀어나가려는 의지가 있다면 북한을 읽는 코드는 따로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이 정도고 원칙이라고 전제하고 대북 정책 구상을 내놓으면 남북 관계 개선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야당도 남북 관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야당이 경제 전문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끌어안고 가려고 하는데 남북 관계 전문가들에 대해서는 별로 그러려는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절박함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당 대표가 측근한테 관련 사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지만, 대표가 이런 문제에 대해 수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즉 '토킹 포인트'를 잡아줄 수 있는 남북 관계 전문가가 있어야 합니다. 순간순간 일이 벌어질 때 순발력 있는 전문가들 몇 사람만 데리고 있으면 어느 정도까지 코멘트해줄 수 있는지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텐데 그걸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센스있고 뛰어난 전문가들은 곳곳에 널려있습니다. 야당이 수용을 안 하는 것이죠.

프레시안 : 남북 관계가 앞으로 한반도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사활적인 사안인데 정치권 전부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정세현 : 경제 잘하고,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면 되고, 남북 관계는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남북 관계 생각하면 골치 아프고, 북한은 말도 안 듣고 뭐 이런 식의 인식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북한 코드를 잘 읽어서 북한을 잘 관리할 수만 있으면 여기서 생기는 이득이 상당합니다. 외교적인 측면만 보더라도 대미, 대중 관계에서도 우리가 상대의 요구대로 밀려가지 않고 일정 부분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현재 상황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이나 실패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이 시기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더 중요한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여야가 대연정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야당에 벼슬자리 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야권 인사나 야권 성향의 인사라도 능력이 있으면 데려다가 쓰라는 겁니다. 경상도와 충청도 연합해서 정치하려는 '정치 공학적'인 계산은 그만하고 이렇게 해서라도 위기 극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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