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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서진희 이메일 newway919@gmail.com
작성일 2015-04-21 조회수 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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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세동점의 퇴조, 중국은 미국과 다를까?
 
 
서세동점의 퇴조, 중국은 미국과 다를까?
[강연회] 서세동점 현상의 퇴조, 한반도의 진로는
 
이재호 기자2015.04.20. 09:47:44
 
 
 
박근혜 정부는 최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가입 건을 두고 명확한 입장과 비전을 갖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였다. G2 국가인 미국과 중국에 각각 안보와 경제를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급급한 한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중국의 부상이 가속화되면서 한국은 이러한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때마다 미국과 중국의 눈치만 보고 있어야 할까? 적당히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는 것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세계 질서가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전략과 목표를 가져야 할까?

이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새정치민주연합 홍익표 의원실은 '문명 전환 시대, 한반도의 진로는?'을 주제로 역사학자 김기협 선생의 세 차례 연속 강연을 마련했다. 지난 15일 첫 강연으로 '서세동점(西勢東漸) 현상의 퇴조'와 이에 따르는 중국의 부상을 살펴보고, 세계 질서 변동기에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18세기 산업혁명을 이뤄낸 서양은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동양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서양 세력이 동양을 지배하는 이른바 '서세동점' 시대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150년 동안 이어진 서양의 지배는 조금씩 흔들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세계 초강대국으로 떠오르는 중국이 있다.

중국 중심으로 설립된 AIIB는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세계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지배해 온 국제금융 질서에 지각 변동이 시작된 셈이다. (☞관련 기사 :중국, '대안 세계' 건설에 나서다)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서방의 주요 국가들이 모두 AIIB에 참여하면서, 향후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날 발제를 맡은 역사학자 김기협 선생은 "서세동점이 150년 만에 퇴조하고 있는 현상은 우리 사회와 한반도에 가해지고 있던 외부의 압력이 획기적인 수준으로 줄어드는 계기"라면서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들던, 아주 참혹한 시기였던 20세기 100년을 마무리할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외부의 압력이 줄어드는 격변기라고 해도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기협 선생은 70년 전 해방 당시 좌우를 막론하고 모든 세력들이 각자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나름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미국과 소련이라는 거대한 외부 세력의 지원을 받은 극우와 극좌세력이 승리했다면서 내부 역량을 키우고 힘을 모으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강연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의 사회로 김민웅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대담자로 함께했으며, 새정치민주연합 홍익표·김성곤 의원이 참석했다. 다음은 강연 주요 내용이다.

 
▲ 역사학자 김기협 ⓒ홍익표 의원실
 

[기조발제]

김기협 :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들은 늘 정치적인 선택을 앞에 두고 있다. 주식시장에서 순간의 판단으로 주식 매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처럼 미시적인 지표를 가지고 결정할 수도 있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득실이 아닌, 장기적인 비전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선택할 때 의미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시야를 넓고 깊게 키워볼 필요가 있겠다는 취지에서 지난해 8월 홍익표 의원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오늘 강연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

오늘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퇴조와 이에 따르는 중국의 부상을 살펴보고, 세계 질서 변동기에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9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150년 이상 한반도에 굉장히 강한 힘을 발휘해온 서세동점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의 요체는 '중국의 위상'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서세동점이 150년 만에 퇴조하고 있는 현상은 우리 사회와 한반도에 가해지고 있던 외부의 압력이 획기적인 수준으로 줄어드는 계기라고 볼 수 있다.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들던, 아주 참혹한 시기였던 20세기 100년을 마무리할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100여 년간 망국과 분단, 전쟁 등 질곡의 시간을 겪어 왔다. 왜 그랬을까? 여기에는 내부적인 문제보다는 외부적인 요인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우리 민족의 내부적 역량보다는 외부적 조건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가 잘못된 이유를 이야기할 때 상징적으로 내세우는 인물이 이완용이다. 그런데 망국의 과정과 해방 이후 분단과 전쟁으로 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검토했을 때 이완용 같은 인물이 잘한 것은 아니지만, 그 한 사람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이야기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이완용이라는 인물이 그런 짓을 안 했어도 그 짓 하려고 줄 서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다면 그런 욕먹을 짓을 하고 싶어서 사람들이 줄을 서게 만든 상황, 즉 외부적인 구조의 문제를 생각해봐야 된다. 그리고 이것의 가장 주요한 요인이 서세동점 현상이었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은 19세기 중엽이 되면서 그 성과가 '부국강병'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를 그대로 학습한 일본이 유럽 열강을 대신해서 조선을 침략했고,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일본의 힘이 조선에 강력히 작용했다. 국가 대 국가의 대결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 내부에서도 일본 쪽에 붙으면 아주 유리한 조건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사회 전반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외부 요인은 해방 이후에도 조선 내에서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해방 이후 자주적이고 당당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민족주의자로 불리던 중도파였다. 중도파 내부에도 이념적으로 좌파, 우파가 있었지만 이 사람들은 이념의 문제는 민족국가를 제대로 세워 놓은 뒤에 서서히 펼쳐나갈 문제고, 일단은 합작을 해서, 즉 좌우를 막론하고 힘을 합쳐서 민족국가를 제대로 세워 놓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과 소련이 각각 남과 북에 압도적 힘을 발휘하고 있었고 거기에 줄을 서는 세력이 극우와 극좌로 나타났다. 이렇다 보니 현실에서 민족주의자들은 미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세력에게 맞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해방으로 일제가 물러가면서 우리 민족의 회복의 기회였던 것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망국의 조건 중에서 일본의 패망이라는 하나의 조건만 바뀌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 미국과 소련이 들어선 것이다. 우리가 주체적으로 이 사회의 장래를 열어갈 만한 다른 기반 조건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던 셈이다.

다만 외부의 조건이 영원무궁한 것은 아니다. 서세동점 현상이 지난 150년 동안 지속되긴 했지만 이제는 점점 퇴조하고 있는 것을 보라. 불리한 외적 조건이 지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불리한 외적 조건이 우리에게 줬던 질곡의 성격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150년 동안 지속됐던 외압이 줄어든다면, 또는 우리가 그것을 줄일 수 있다면 이제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대담 1. 중국은 미국과 다르다?]

▲ 김민웅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홍익표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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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 과거에 서구 중심으로 이뤄졌던 제국주의적 패권 확대 과정이 일정하게 주춤거리고 있거나 중단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서세동점을 가져온 기본적 원리인 전쟁, 착취, 폭력 등이 중단되고 새로운 문명의 원리가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중국이 이를 극복할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중국 패권의 시대가 미국 패권의 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김기협 : 제가 최근에 재밌게 읽고 있는 책이 자오팅양(趙汀陽)의 <천하체계>라는 책이다. 중국에서는 민족국가의 경계선에 의해 끝나지 않는 '천하'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에서는 천하의 이익을 생각하고 여기에 국가의 이익을 종속시키는 정치 철학을 발전시켰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서구는 이와 좀 다르다. 서구와 중국의 차이를 원자론과 유기론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는데, 원자론의 영향을 받은 서구의 정치 조직에서는 국가가 국민 한 명 한 명을 상대하는 것이고 국제관계도 비슷한 원리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가를 넘어선 접근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세계 패권이 네덜란드-영국-미국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세계관의 차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같은 평면 위에서 위치를 바꾸는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관이 달라질 가능성이 생겼다. 평면 자체가 옮겨지고 있는 상황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김민웅 : 서구에서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국제관계를 근대국가의 개별적 관계로 풀어가는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중국의 천하 개념은 천하의 중심에는 예와 덕이 있고 이것이 흘러서 모든 것을 아름답게 다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명 서구와 중국이 국제관계를 보는 관점은 다른 측면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중국도 미국과 유사한 행태를 보였다. 국가 성장 과정에서 군사와 전쟁을 주요한 수단으로 썼다는 점이다. 특히 근대 이전의 중국인 청(淸)나라는 엄청난 군사적 확장을 추진했다. 한쪽에서는 예치 시스템이 작동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명백한 군사적 확장이 존재한 셈이다.

중국의 근대화 운동인 양무운동, 변법자강운동을 보더라도 당시 가장 먼저 제기됐던 사안은 군사적 문제였다. 철학이나 가치에 대한 고민이 아닌, 어떻게 군사력을 확장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따라서 서세동점이 끝났다고 해서 세계관, 문명의 논리가 바뀔 것이냐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유보적일 수밖에 없다.

내부적으로 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과 중국의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은 국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을 학살했다. 이에 못지않게 중국에도 티베트를 비롯한 소수민족 문제가 있다.

중국의 엄청난 군사력 증강과 한족 중심의 통합력을 유지하기 위한 힘이 본격적으로 외부적으로 표출된다면, 동아시아에는 서세동점 이후 새로운 문명이 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패권 질서가 만들어져서 우리한테 서세동점 못지않은 압력이 가해질 수도 있다.

김기협 : 물론 중국 역사를 보면 중국을 지배하던 지도부가 예치나 덕치 같은 그럴싸한 이름을 걸어놓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누구 못지않게 험악한 양상을 보인 적도 많았다.

그런데 군사력에 있어서 서구와 중국은 좀 다른 측면이 있다. 중국의 전쟁 목적은 식민지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천하체제의 방어막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주변에 있던 지역들을 안정시키는 방어적인 성격이다.

그리고 자오팅양의 책, <천하체계>에서 재밌게 본 대목이 있는데 중국의 전통적 사유에서는 '관용'이 없다고 한다. 자오팅양은 이걸 굉장히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관용은 '미워하면서 참아주는 것'인데, 중국에서는 변화의 가능성을 전제로 해서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이 전통이라는 주장이다.

지금 중국의 민족 현황을 보면 한족이 85%, 나머지 소수민족이 10% 안팎이다. 그러나 최초의 통일제국인 진나라 때부터의 한족의 자손을 살펴보면 아마 20% 정도 밖에 안 될 것이다. 각각의 시기에 오랑캐로 존재했던 민족들이 한족 속에 융화돼온 것이다.

김민웅 : 하지만 중국이 이른바 '천하체제'를 복원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예를 들어 진나라가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하는 과정을 보면 군사력이 가장 큰 강점이었다. 이는 중국 역사에서 계속 나타난다. 거란, 몽골, 여진 등이 한족 시스템과 결합했는데 여기에도 군사력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게다가 지난 100년 동안 중국 내부에는 서구의 가치가 많이 장착돼있다. 국가체제 운영 방법, 경제 운영 방식, 자본에 대한 이해 등등 서구식 방식이 중국과 융합되면서 새로운 중국이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서세동점 이후의 중국의 부상을 '문명의 변화'로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더라도 중국은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근현대에 들어와서도 참혹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이런 일들을 철저히 반성하면서 중국이 인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중국이 아직 그런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서양에서는 전쟁, 폭력, 착취에 반대해서 투쟁했던 역사가 있다.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유를 확대하기도 했으며 평등을 위한 치열한 전투도 있었다. 그런데 중국이 인권문제, 여성문제, 소수민족의 문제 등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중국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한계가 너무나 뚜렷하다는 것이다.

▲ 새정치연합 홍익표 의원 ⓒ홍익표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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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표 : 민주주의의 확립이라는 차원에서의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 신자유주의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의 뚜렷한 민주주의 후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 현상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평화 가치보다는 애국주의로 둔갑된, "전쟁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발전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민주주의적 질서와 시민사회가 정착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시민사회보다는 관료와 정치 리더들이 주도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지도자와 엘리트들이 바뀌면 중국의 변화 역시 달라질 수 있고, 이러한 맥락에서 민주주의의 후퇴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김기협 : 중국의 주체적인 입장을 중시하는 중국학자들은 민주주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민본주의'를 언급하는데, 민주주의의 정의를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기준으로 보자면 '국민의, 국민을 위한'까지는 민본주의에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민본주의가 '국민에 의한'이라는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반성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중국은 서양의 근대적 가치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류 사회를 꾸려나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조공체제다.

어떤 사회도 계층이나 불평등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배 계층은 체제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래야 체제로부터 계속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오랫동안 '천하 경영'을 했던 경험을 통해 일종의 노하우를 개발했다. 미국처럼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다는 논리로 이라크든 아프간이든 때리고 보는 식이 아니라, 조공체제를 통해 약한 국가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서로 다른 위치에서 하나의 질서를 위해 공헌하자는 식의 유인책을 쓴 것이다.

이번에 AIIB 가입 문제와 사드의 한반도 내 도입 문제가 함께 거론되는 것이 아주 상징적인 사례라고 본다. AIIB는 함께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인 반면 사드는 군사적 위협을 없애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군사력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른 셈인데, 이러한 현상들이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고, 그 안에서 중국의 특성이 부각될 것이다.

[대담 2. 70년 전 격동기, 조선에서 얻을 교훈은]

김기협 : 결과적으로 보면 해방 공간에서 극좌나 극우가 상황을 악화시키는 역할을 많이 맡았다. 서로 너무 욕심을 부린 것이다.

술에 취한 사람이 언덕에서 굴러떨어질 때, 힘을 쓰지 않고 구르기만 하면 크게 다치지 않는 반면,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면 더 크게 다친다. 어떤 상황에서는 주동적인 노력을 절제하는 것이 좋은 경우도 있다.

해방 공간에서 각 세력들은 각자가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욕심을 잠시 접어두고 일단 민족국가를 세워놓고 이 틀이 완성된 뒤에 본격적인 경쟁을 하는 방향으로 힘을 모으는 단계를 거쳤어야 했다. 세계 질서가 변화하는 전환기에서는 욕심을 접는 것도 필요하다.

김성곤 : 1945년 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오스트리아는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 정부를 세웠다. 외세의 영향이 커도 당시 조선의 내적인 응집력이 강했다면, 김구나 여운형 같은 중도파가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민족주의가 성숙되지 못했던 이유도 있다.

김기협 : 오스트리아는 좌우합작으로 10년 신탁통치를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그에 비해 우리의 반탁 운동은 당시의 엄혹한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벌어졌다. 물론 오스트리아와 조선의 지리적 위치·역사적 배경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 역시 분명하다.

 
▲ 왼쪽부터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 역사학자 김기협,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김민웅 교수 ⓒ홍익표 의원실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스트리아 주위에는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른 국가들이 있었다. 이 국가들이 오스트리아에서 더 이상 험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기본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분단으로까지 상황이 전개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런데 한반도는 달랐다. 일본은 2차 대전 패전국이라 발언권이 없는 상황이었고 중국 역시 국공 내전으로 내부 사정 챙기기에 바빴다. 즉 한반도에는 미국과 소련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없이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게다가 중국에는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게 됐다. 이런 상황이 미국으로 하여금 남한에 더 집착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

김민웅 : 오스트리아에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있다. 이들이 유럽에서 차지하고 있는 역사적인 위치가 있다. 또 유럽은 오스트리아를 이슬람 세력에 대한 일종의 대치선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여기가 깨지면 유럽의 장래가 바뀔 수 있다는 유럽 전체의 합의점이 있었기 때문에 분단되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

현재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긴장된 조정기'를 겪고 있는데 이 속에서 한반도의 위치와 가치가 국제사회에 무엇으로 부각될 것인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2차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가 분단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가치를 국제사회에 부각시켰기 때문이었다.

우리 역시 한반도의 위치와 가치가 무엇으로 부각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오스트리아의 경우처럼, 한국이 국제적으로 어떻게 자신의 가치를 부각시키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서세동점이 약화되면서 외부 압박이 덜어지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새로운 압력이 가해져서 곤란한 시기가 올 수도 있다. 압력이 떨어지는 기간은 길어봐야 50~70년 정도로 예상된다. 내부 통합력을 빨리 구축하지 않으면 과거와 같이 중화체제의 구심력에 빠르게 흡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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