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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서진희 이메일 newway919@gmail.com
작성일 2015-04-09 조회수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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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 외교, '많이 큰 것'인가 '맛이 간 것'인가?
 
 
한국 외교, '많이 큰 것'인가 '맛이 간 것'인가?
국내 정치 수단으로 전락전략도 복안도 없다
 
김준형 한동대학교 교수2015.04.08. 17:01:42
 
 
 
제목이 조금 과격하게 들릴 수 있지만 현재의 한국 외교를 놓고 이 시점에서 반드시 던져야만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얼마 전 외교부의 수장이라는 사람이 한국이 처한 외교 상황을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축복'이라고 표현한 것과 맞닿아 있다.

물론 외교부의 해명처럼 해외공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격려 차원에서 한 말이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언급이 나온 시점과 상황, 그리고 곧바로 나온 청와대의 입장표명을 연결해보면 단순하게 치부할 사안이 아니다.

윤병세 장관의 언급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 문제와 AIIB(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논란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의식해 나온 계산된 반응일 것이다. 국내의 사드배치논란은 물론이고, 중국과 미국의 외교관들이 연속적으로 방한해서 사드 공방에 관련한 입장표명을 하는 와중에 존재감이 없고, 중국의 주권간섭이라는 결의에 찬 국방부 대변인의 월권에 가까운 발표에도 침묵하며 청와대만 바라보던 외교부였다.

진통 속에 AIIB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국익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타이밍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미국 눈치만 살피다가 영국과 호주 등이 참가로 기울자 슬쩍 숟가락을 얹는 식의 행보를 했다는 지적도 의식했을 것이다. 여당 내에서조차, 공론의 장에선 한 마디도 못하던 외교부가 뒤늦게 자기 식구들을 모아놓고 자화자찬을 하는 것은 자가당착에 빠진 우물 안 개구리라고 신랄하게 쏘아붙였다.

 
▲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지난 3월 30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개막된 2015년도 재외공관장 회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교부는 미·중 양국 사이에서 압박을 받아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며, 나름의 복안과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를 썼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구도가 아니라 이를 양쪽으로부터 구애를 받는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주장한 것은 미·중 양국이 한국을 놓고 경쟁하지만, 우리는 느긋하게 국익을 지킨다는 식으로 포장한 것이다. 여기에다 전략적 모호성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우리의 외교 전략을 대내외에 소개하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윤 장관은 입버릇처럼 지난 2년간 박근혜 정부의 외교가 얼마나 눈부신 것이었는지를 강조해왔다. 그는 지난 2년간 60여 회의 정상회담과 300여 회의 외교장관회담을 치렀으며, 중견국 협의체인 MIKTA(멕시코, 인도네시아, 터키, 한국, 호주) 외교장관회의를 주도했으며, 유엔에서의 활약 등을 내세워왔다. 한국의 외교적 위상이 과거와는 다르게 '커졌다(?)'는 것이다.

적어도 청와대는 그렇게 평가하는 모양이다. 윤 장관의 언급이 나간 직후 박근혜 대통령이 곧바로 맞장구를 쳤다. 비슷한 논조로 언론 등에서 우리가 강대국 사이에 끼었다고 큰일 났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너무 그럴 필요는 없다는 말로 지원사격을 했다. 시점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장관과 대통령의 상황인식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박근혜 정부가 여러 가지 국내실정과 비교해 외교는 상대적으로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상투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외화내빈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이명박 정부가 G20나 핵안보정상회의 등의 유치 등을 내세우면서도 실익은 거의 없었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외교를 못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정치를 위해 외교를 이용함으로써 외교가 희생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여러 번 반복적으로 강조해온 바대로 국제정치 환경이 국내정치에 큰 영향을 끼쳤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국내정치변수가 국제정치 및 대외정책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이는 동북아 역내 6개국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이를 감안하더라도 한국은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 발칸반도와 함께 지정학적 저주라 불리고, 분단 현실 속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음에도, 한국의 경우에는 단순히 국내 정치가 대외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를 넘어 국익보다는 국내 정치권력의 필요를 위해 이용한다.

정치력도 외교력도 이미 바닥을 보인 박근혜 정부로서는 손만 뻗치면 닿을 곳에 있는 가장 강력한 '권력유지수단'을 쉽게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미래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까지 이용하는 것은 정말 우려스럽다. 안보포퓰리즘과 종북몰이는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애용해온 전략이며, 사드논쟁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실제 여당의 주도로 사드를 공론화시킨 것은 주한 미국대사 리퍼트가 피습당한 직후부터이다. 심지어 사드도입을 리퍼트대사 피습에 대한 보상적 의미로 언급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별 폭력 행동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매카시즘의 도구로 사용했고, 이에 탄력을 받아 안보문제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마저 엿보인다.

두말할 필요 없이 사드배치론에 담긴 안보포퓰리즘은 우리의 안보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리어 한반도에서 군비경쟁과 냉전적 진영대결로 가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의 해법은 사드가 아니라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이지만, 한미 양국의 외교무대에서 거의 사라져버렸다.

백번 양보해서 사드가 한미동맹의 방어력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가만 있을 리가 없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술도 더 정교해질 수밖에 없다. 역사상 모든 군비경쟁이 그랬다. 사드도입은 동북아 군비경쟁, 냉전부활의 도화선이 될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미·중 군비경쟁은 물론이고, 러시아까지 가세할 가능성마저 있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가 이런 식으로 섣부른 공론화와 자기 분열적인 냉전 관성을 키우다가는 고립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지난 2년여의 시간 동안 상대적으로 성공적이라고 자평하던 외교가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사드문제로 인해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중국이 보기에는 한국이 미국과 배후에서 이미 합의를 했고 사드를 결국 배치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고, 미국은 미국대로 한국이 중국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AIIB 가입 건처럼 미국을 따돌린다고 생각으로 기울고 있다.

이러는 사이 미국과 일본의 밀월관계는 점점 깊어지고 있다. 사드논란이후 한국에 대한 미국의 논조가 거칠어지는 이유다. 사드배치에 관해 한미 양국 간 공식적인 협의가 없었다는 공식입장에도 불구하고 미국 군부 측이 지속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백악관과의 교감이 아니라면, 최소한 묵인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사드제조사인 록히드마틴사까지 한국 정부가 사드시스템을 사들일 가능성에 대비해 한국 정부에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고 공개함으로써 진실공방에 불을 지폈다.

정부가 강변하는 소위 '전략적 모호성'도 문제다. 이는 선택이 어려운 상황에서 시간을 벌면서 상황이 개선되기를 기다리는 전략인데,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상황을 나쁘게 만들고 있다. 모호성의 실체가 국익을 위한 치밀한 실용적 계산에 의한 전략이 아니라, 한국 외교의 부재를 드러낸 것일 뿐이다.

여기에 남북관계는 입구도 출구도 찾지 못한 채 주변 강대국의 경쟁에 우왕좌왕하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외교적 대응력은 자화자찬과는 정반대로 심각한 혼선과 무능에 빠져있다. 세력 전이의 국면에서 동북아는 미국과 일본의 해양세력과 중국과 러시아의 대륙세력이 불안정한 대치로 흐르고 있다. 우리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변수임에도 우리는 '중재자'의 역할을 마다하고 ‘방화자’의 역할만 하고 있다. 우리 미래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유라시아시대의 '허브'는 커녕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는 '섬'이 되는 외교다.

글의 모두에서 던진 질문의 대답은 이미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외교가 '많이 큰 것'이 아니라 '맛이 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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