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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논문

이름 박정례 이메일 newway919@gmail.com
작성일 2014-02-05 조회수 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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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② ‘혁명의 나라’ 중국을 분석한다 - 김갑수 선생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은 무엇일까?
                                             ‘혁명의 나라’ 중국을 분석한다 - ②

“관념의 물살에 올라타 희망에 부풀어 오른 젊은이, 구경거리를 찾아다니는 망나니, 가슴속에 맺힌 것이 있는 사람, 기인과, 처단을 모면한 광인이 뛰쳐나오고 범죄자가 은신처에서 나온다. 모든 사람이 각기 자기주장을 하고 나선다. 예의가 조롱당하고 관습이 파괴된다. 상스러운 말과 노골적 비방이 정상으로 통용된다.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건물은 훼손되고 성상은 파괴되고 상점이 약탈당한다. 사람들은 유인물을 주고받아 읽으면서 벅찬 희열이나 분노를 가누지 못한다.”(자크 바전 서양문화사,『새벽에서 황혼까지』에서)

윗글은 프랑스 출신 미국 사학자 자크 바전이 묘사한 혁명 장면이다. “혁명이란 이념으로 표방된 권력과 재산을 교체시키는 일”이...
라고 정의한 그의 혁명 개념은 형이하학적이다. 서양의 근대(Modem Era)는 혁명이 빚어낸 분열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보는 그의 혁명관은 조금도 낭만적이지 않다.

낭만적인 혁명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처럼 사실적인 혁명관에 다소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서양인의 혁명관이며, 이 서양인은 보수적인 학자라는 점을 다소 감안할 필요는 있겠다. 분명히 서양의 혁명과 동양의 혁명은 다른 모습을 띤다.

혁명은 낭만적인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혁명은 도덕적인가? 얼마간은 그렇다. 요컨대 낭만과 도덕은 혁명과 필연적으로 공존하는 가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혁명은 위대한 것인가?”라고 물으면, “그렇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중국 역사에는 수많은 난과 혁명이 있었다. 유명한 것으로 안록산의 난, 황소의 난, 홍건적의 난, 삼번의 난 등이 있다. 그러나 주나라 무왕, 진나라 시황, 한고조 유방, 수문제 양견, 당고조 이연, 명태조 주원장, 금태조(2대부터 청) 누르하치 등은 혁명가였다. 이어서 쑨원의 신해혁명, 마오쩌둥의 중국공산혁명 그리고 덩사오핑의 개방혁명이 이어졌다.

역사가들은 덩사오핑의 개방혁명을 혁명이라고 하지 않는 대신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에다 혁명 자를 붙이고 있는데, 사실을 들여다보면 덩사오핑의 집권은 분명히 혁명이었지만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은 혁명이 아니라 난에 가까운 것이었다. 기실 덩샤오핑의 개방혁명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제압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것은 난이데 또 어느 것은 혁명이란 것인가? 나는 혁명에는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본다. 교체성과 지속성과 가치성이다. 권력이 교체되어야 하고, 상당 기간 지속되어야 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당연히 5·16이나 12·12는 혁명이 아닌 난이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동학혁명, 4·19, 5·18은 난이 아닌 항쟁으로서 혁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럼 우리에게는 혁명이 없었다는 것인가?

혁명의 조건에는 그 방식, 즉 유혈이냐 무혈이냐의 문제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볼 때, 난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혁명은 유혈이었다. 실제로 위에 제시된 중국의 혁명 중 덩샤오핑의 개방혁명만이 무혈이었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영국의 명예혁명이나 프랑스혁명을 위대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들은 미국의 독립혁명에 비하면 덜 위대하다고 본다.

우리에게도 혁명다운 혁명이 있었다. 나는 여기에 이성계와 정도전의 조선역성혁명을 꼽는다. 조선왕조는 집권세력을 교체했으며, 518년 동안 존속했고, 유학민본정치라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 나는 명예혁명이나 프랑스혁명 따위보다는 조선의 역성혁명을 더 우위에 둔다. 물론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혁명은 2만 5,000리의 대장정을 거친 후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을 모두 격퇴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창건한 마오쩌둥의 중국공산혁명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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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갑수 선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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