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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강동호 이메일 newway919@gmail.com
작성일 2014-09-29 조회수 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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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호수 답사기

바이칼 호수 답사기
 강동호 (축제뉴스 대표기자)

 ① 허브향기 맡으며 자작나무 숲 6시간 트레킹

 브랴트족 족장 "우리 조상이 한반도까지 내려 갔어요~~"

 

 

나이가 들면 누구나 자신의 뿌리에 대한 갈망이 있듯이 한국인들도 스스로의 근원에 대해 늘 갈망해 왔다. 특히 일제 강점기 이후 한민족은 유라시아 대륙의 우랄-알타이어계의 일족이라는 ‘기마민족설(騎馬民族說)’이 정설로 자리잡아 왔다. 말을 타고 양떼를 몰고 초원을 건너 온 유목민의 일족이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최근에는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한민족이 중부시베리아 지역의 바이칼 호수에서 순록을 치다 따뜻한 초지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 나가고 있다. 말하자면 바이칼호수는 유목민이었던 한민족이 한반도에 내려오기 전의 ‘베이스 캠프’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이칼 일대는 ‘한민족의 시원(始原)’이라 불린다. 바이칼(Baikal)은 몽골어로 ‘자연’을 뜻하는 바이갈(Baigal)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바이칼 호수는 그러나 동시에 한민족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 여러 민족의 시원지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 흉노, 숙신, 말갈, 읍루, 부여, 여진족 등 많은 동아시아 민족들이 모두 이 지역에서 살거나 주변을 거쳐 갔기 때문이다. 실제로 체질적으로도 몽골, 만주, 한국, 아메리카인디언 들의 DNA구조가 거의 같다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바이칼 호수 자체가 화산폭발로 생겨난 열수(熱水) 광산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저 멀리 지질시대 당시 바이칼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빙하기의 추위를 피해 온 여러 민족들을 끌어 들이는 중요한 유인이 되었을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지금도 지하 저 밑에는 마그마가 끓고 있고 하루에도 여러 차례의 소규모 지진활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고한다.

 바이칼 호수는 지도상으로 시베리아 남중부 지역(러시아인들은 개척시대의 관습에 따라 아직도 동부시베리아라 부른다)의 이르쿠츠크 공화국과 부랴트 공화국 사이에 있다. 어찌 보면 일본 열도와 비슷하게 생긴 이 호수는 남북으로 한반도 길이와 비슷하며, 면적은 남한의 3분의 1 크기이다. 생성된 지 2,500만년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이자 최고 수심 1,637미터로 가장 깊은 호수이며 전세계 담수량의 20%를 차지한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바이칼 호수로 흘러드는 물줄기는 330여개에 달하지만 나가는 강은 오로지 앙가라(Anganra) 강 하나 뿐이라는 점이다. 터키 수도 앙카라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투르크족과도 유대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앙가라 강은 북으로 흘러 예니세이 강과 합류한 후 드넓은 북부 시베리아를 적신다(물론 겨울철이 길어 대부분 얼어 있을 때가 많다). 호수물이 빠져 나가는 앙가라 강 가운데는 부랴트족 무당들이 제사를 지냈다는 ‘샤먼 바위’가 유명하다. 샤먼 바위는 삼각형 모양인데 앙가라 공주의 목에 박힌 바위 덩어리라 하여 북쪽 예니세이 왕자를 그리워 한 공주에 대한 아버지의 분노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 온다. 아버지 바이칼은 330여명의 왕자 가운데 한 명에게 앙가라 공주를 시집보내려 했으나 공주가 거부하자 돌로 쳐 죽인다.

필자는 지난 8월 25일 ‘사단법인 대륙으로 가는 길’이 통일의 꿈을 안고 두 번째로 기획한 바이칼 답사 여행에 참가했다. 우리 탐사대는 이르쿠츠크와 가까운 바이칼 호수 남서쪽의 트레킹 로드 23km를 걸었다. 보통 6~7시간이면 충분히 주파할 수 있는 길이지만 60~70대가 많은 탐사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예상치 않은 수고를 더 들여야 했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호수 주변을 굽어다 볼 수 있는 꾸불꾸불한 길로 이뤄진 트레킹 코스는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자작나무와 하늘로 곧게 뻗은 소나무가 장관을 이룬다. 이 일대가 온대림과 타이가 침엽수림이 혼재하는 점이지대임을 말해 준다. 자작나무는 활엽수 중 가장 북쪽에 자라는 나무로 사시사철 흰 껍질이 특징이며, 목질은 약해 몇 년 자라다 픽픽 쓰러진다. 숲속 여기저기에는 비바람에 쓰러진 자작나무들과 함께 여름의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자작나무들이 지천을 이룬다. 자작나무 줄기에는 한국인들이 귀한 약재로 치는 말굽버섯과 차가버섯이 그냥 노천에 매달려 있다. 지나가다 톡톡 쳐도 한 두 개쯤 기념물을 얻을 수 있다.

숲 속 길이 아닐 때에는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이름모를 허브들이 발밑에 줄지어 널려 있다. 지날 때마다 손으로 스윽~ 훑어 코에다 갖다 대면 그윽한 향내가 예상치 못한 고행길(?)에 몽롱해 진 머리 속을 다시 맑게 해 준다.  

 

바이칼 호수 주변에는 3,500여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데 80% 이상이 이 곳 특산종이라고 한다. 지질시대 이후 인류의 시원지일 뿐만 아니라 동식물의 인큐베이터, 아니면 ‘시베리아의 갈라파고스’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리스트비앙카 인근에 있는 호수박물관은 이런 사실들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동행한 가이드는 바이칼 호수의 가장 중요한 3가지 생물은 유일한 포유류인 바이칼 바다표범 ‘네르파’와 박테리아나 미생물들과 함께 죽은 물고기 시체와 오염물질을 처리하는 ‘에삐슈라’라 불리는 민물새우,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이 지역 주민들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인 ‘오물’(Omul)이라 불리는 연어과 어류라고 설명해 준다. 또한 이 곳에는 길이 1.8m, 무게 120kg 정도 되는 철갑상어도 살고 있으며, 호수를 둘러 싼 해발 1,500~2,000미터급의 주변 산악지대에는 담비, 수달, 족제비, 흰꼬리수리, 새매부엉이, 에델바이스 등 다양한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호수 안에는 총 22개의 섬이 있는데, 가장 큰 것은 호수의 북동쪽에 자리 잡은 길이 72km의 알혼(Olkhon)섬이다. 제주도 절반 크기인 이 섬은 현존하는 부랴트족과 야쿠트족의 조상인 쿠리칸족이 최초에 거주한 곳이며, 최고봉인 지마봉에는 전 세계 샤먼들이 신의 메시지를 받기 위해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섬 곳곳에는 샤머니즘의 흔적들이 다양하게 널려 있다. 언덕을 넘는 고갯마루에는 돌무더기 서낭당이 있고, 바이칼을 굽어보는 언덕에는 세르게라는 장승이 서 있으며, 영이 깃들만한 큰 나뭇가지에는 청・홍・백색의 잘라아라는 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탐사대는 시간을 내서 한민족과 가장 많이 닮았다는 부랴트족이 사는 한 마을을 찾아 갔다. 버스로 서너시간을 달려 찾아 간 곳은 이르쿠츠크주 부랴트 자치구내의 한 도시로, 슬라브계에 밀려 점차 인구가 줄고는 있지만 조상대대로 고유의 전통을 면면히 이어 오고 있었다.

우선 이들은 황색 피부에 평평한 얼굴과 튀어 나온 광대뼈, 얇은 입술, 가는 실눈 등 생김새가 우리와 아주 비슷하며, 어린 아이의 경우 엉덩이에 몽골반점이 있다. 문화적으로도 산과 계곡에 영이 있다고 믿으며, 제사후에는 음식의 일부를 산야에 뿌리는 고시래의 전통도 있다. 또 알혼섬 앞바다에 처녀를 제물로 바쳤다는 인당수의 전설이 있고, 나무꾼과 선녀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공기돌 놀이, 제기차기, 자치기 등 어린 아이들이 즐기는 유사한 놀이들도 한민족과 닮은 것들이 많다.

이 마을의 촌장은 “몇 년전 경주의 세계문화엑스포에도 초대되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면서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로 미뤄 보면 문화적으로나 인류학적으로 우리 조상들이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인 울란우데 지역을 지나 몽골, 만주를 거쳐 한반도에까지 내려 갔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② 바로크 양식으로 빛나는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유배지에서 2차대전이후 시베리아의 이정표가 된 도시

 

이르쿠츠크 중앙부의 주정부 청사 앞에는 끼로바 광장이 있고, 최근에 만든 분수대가 있다. 청사 뒤편으로는 영원의 불꽃이 있으며, 곧장 나아가면 앙가라 강변으로 이어진다.

 

주정부 건물 뒤의 영원의 불꽃(영웅들의 묘). 제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혁명,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여러 전투에서 전사한 무명용사들을 포함한 모든 죽은 자들의 영혼을 기리는 장소이다. 러시아 곳곳의 대도시에는 대부분 이 영원의 불꽃이 조성돼 있다.

 

이르쿠츠크 구시가지 레닌 동상을 지나 카페거리(마르크스거리) 입구에 서 있는 담비를 물고 있는 호랑이 조각상.

바이칼 호수 옆의 가장 큰 도시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린다. 1860년 이 곳을 처음 방문했던 안톤 체홉이 그렇게 불렀다.

이르쿠츠크는 처음 개발 당시만 해도 러시아의 유배지에 불과했으나 러시아혁명과 1.2차대전를 거치면서 일약 시베리아의 이정표가 된 도시다. 모스크바에 살던 슬라브 민족으로선 동방으로 가는 길목에서 반드시 이 도시를 거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시베리아 남중부(러시아인들은 개척시대의 관습에 따라 아직도 동부시베리아라 부른다) 이르쿠츠크 공화국의 주정부가 있는 이르쿠츠크는 러시아 정교회가 추구하는 전통양식과 화려한 유럽의 바로크 양식, 그리고 동방의 샤머니즘이 혼합된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빛난다.

앙가라 강을 끼고 있는 인구 59만명의 이 도시는 역사가 꽤 오래된 도시다. 1615년 카자크(Kazak) 기병대에 의해 정복된 이래 1686년 도시로 승격해 동부 시베리아 정복의 전초기지로 이용되다가 18세기 초엽에 이르러서는 시베리아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한다. 1761년 이르쿠츠크 원정대가 베링해협을 정복하고 알래스카에 상인들이 정착하면서 이르쿠츠크는 일약 동부 시베리아 전체의 맹주로 군림하게 된다.

그러나 재정러시아의 압제가 극에 달한 19세기에 들어서는 숱한 지식인들과 정치인, 군인들의 유형지로 변모한다. 또한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1917년) 후에는 반혁명 백군의 본거지가 되어 적군과 백군간의 불꽃튀는 격전장이 되기도 했다.

유형지로서 이르쿠츠크가 유명해 진 것은 전적으로 ‘데카브리스트(12월당)’ 청년 장교들의 유배 사건이다. 1812년 나폴레옹 전쟁 당시 모스크바를 침공한 프랑스군을 뒤따라 파리까지 진격한 러시아군 청년 장교들은 러시아의 후진 현실에 크게 자극을 받아 러시아로 돌아 온 1825년 12월14일 농노제 폐지와 군주제 타파를 목표로 봉기하였다. 그러나 거사는 실패하고 원로원 광장에서 최고 지도자 트루베츠코이 공을 기다렸던 3,000여명의 장교와 군인들은 모두 체포돼 5명이 사형되고 120명은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졌다.

이 때 이들 장교의 부인이나 약혼자중 일부는 남편을 버리지 않고 시베리아 유형을 자청해 이곳 동방의 머나 먼 이르쿠츠크까지 따라오게 되었다. 이들은 남편을 찾아 영하 수십도의 혹한 속에서 눈보라길을 40여일 썰매로 달려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후 손수 옥바라지를 하면서 아이를 키웠다.

그러나 아이로니하게도 “하느님을 높고 짜르는 멀리 있으니 죄와 벌이 무섭지 않다“고 으쓱거리는 탐관 오리들이 판치던 살벌한 이르쿠츠크는 유배되어 온 청년장교들과 그들의 부인들에 의해 ‘시베리아의 파리’로 변모하게 된다.

이들 청년장교들과 부인들은 강제노동이 끝난 후 정착이 허용되면서 수준높은 정치토론과 시 낭송, 그리고 음악회를 통해 당시의 수도였던 생 뻬제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생활 양식을 시베리아에 전파하였다. 또 교회와 수도원을 세워 상류 귀족사회의 문화를 동방의 황량한 도시 이르쿠츠크에 심어놓게 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후일 러시아 유배문학의 원초적인 배경이 되었으며, 혹한을 녹이는 그들의 순애보는 지금도 전해 듣는 사람들을 숙연하게 한다. 이들이 묻혀 있는 즈나멘스키 수도원에는 오늘도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갓 결혼한 신혼부부들이 사랑을 맹세하는 장소로도 사랑받고 있다.

또한 인근에 있는 발콘스키의 집은 오늘날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여기에는 데카브리스트들의 초상화와 그들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삽화 및 가구 등이 방과 복도를 꽉 채우고 있다. 당시 이들과 교유관계를 맺었던 러시아 국민시인 푸시킨의 조각상도 이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푸시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로 시작되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③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철도체험 ‘환바이칼 관광열차’

 빨라빈늬 마을에 내려 점심 식사한 후 어슬렁 거리다 돌아 오기

  

시베리아 여행의 백미는 단연 시베리아 횡단철도다. 영화 ‘설국열차(2013)’나 ‘닥터 지바고(1965)에 나오는 듯한 침대열차에 몸을 싣고 끝간 데 없는 광활한 벌판을 누비는 경험은 시베리아가 아니면 어려울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이 철도는 동쪽 모스크바에서 서쪽 모스크바까지 9,298km로 전 지구둘레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완전 전철화가 된 지금도 열차에서 내리지 않고 줄곧 달려도 동쪽 블라디보스톡에서 서쪽 쌩테스부르크까지 무려 6박7일, 152시간이 걸린다. 군데군데 중간 역에서 10~30분씩 쉬어 가지만 노인층이나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항공편으로 서울에서 곧바로 이르쿠츠크로 들어가 바이칼 호수주변을 관광하는 코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코스를 선호하는 여행객들은 편도 3시간짜리 환(環)바이칼 관광열차를 타는 것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랜다.

환바이칼 관광열차는 바이칼항구 역에서 시작해 슬루진카 역까지 시속 20~30km의 저속으로 천천히 운행한다. 관광객들은 대개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작은 어촌마을 리스트비앙카 항구까지 버스로 이동한 후 또 다시 여객선이나 바지선을 타고 강건너 바이칼항구 역까지 이동해야 한다.

관광열차는 중간 중간 잠시 쉬었다 가며, 그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시대의 철도를 경험시킨다. 마치 우리나라의 수인선이나 강원도의 영동선, 호남선의 일부 철도 구간을 연상하면 된다.

관광객들은 대개 오전에 출발해 종착역까지 가지 않고 빨라빈늬 마을에 내려 점심 식사를 한 후 근처 숲속을 거닐거나 호숫가에서 수영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이윽고 승선 시간이 되면 근처 작은 항구에서 유람선을 타고 이르쿠츠크 시내까지 단 번에 이동해 버린다. 바이칼호 수변과 앙가라 강가의 자작나무 숲을 감상하다 보면 2시간여 승선시간이 금새 지나가 버린다. 다시금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환바이칼 관광철도는 사실 처음 개통 당시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일부분이었다. 바이칼 호수를 바짝 끼고 도는 이 열차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구간중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구간으로 꼽힌다. 그러나 호수 주변의 산악지형으로 인하여 시베리아 횡단철도 구간중 가장 늦게 개통됐고, 1904년 러일전쟁 당시에도 완공되지 못해 겨울철 호수가 얼었을 때는 얼음 위로 기차를 운행하거나 쇄빙선을 이용해 바이칼의 얼음을 깨면서 울란우데가 있는 건너 편 항구까지 열차를 옮겨 날랐다고 한다.

1905년 환바이칼 구간이 마지막으로 완공되면서 비로소 시베리아횡단철도가 제 구실을 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이 환바이칼 구간을 '황금 연결쇠(Golden Buckle)'라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또다시 바이칼 호수의 남단에서 이르쿠츠크 시내까지 가는 철도가 직선화되면서 환바이칼 철도는 제 기능을 잃고 관광열차만 운행하는 추억의 철도 구간이 되고 말았다.

 

④ 반야에서 사우나하다 더우면 앙가라강에 ‘풍덩’

 

이르쿠츠크에 체류하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 중의 하나는 ‘반야(Banya)' 사우나이다.

자작나무 숲 속을 걸어 들어가 역시 자작나무로 만든 방갈로에 설치한 사우나에서 온 몸을 데운 후 앙가라 강 물 속으로 그냥 ’풍덩~‘ 뛰어 드는 것이다. 환바이칼 관광열차와 더불어 절대로 빠뜨려서는 안되는 것 중의 하나다.

러시아의 전통 증기 목욕인 반야는 국민 선호도로 보면 우리나라 찜질방에 해당하는 것으로 러시아 국민들이 아주 좋아한다. 강가나 호수가에 작은 오두막이 있으면 이는 거의 반야가 틀림없다. 숲속 요정이 심술을 부리므로 반드시 옷을 모두 벗고 알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민간설화가 전해 내려 온다.

반야 사우나는 큰 자갈이나 바위를 데운 스토브가 있는 방에 여럿이 같이 들어가 물을 천천히 끼얹어 증기를 만든 다음 이를 온 몸에 쬐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자작나무 가지로 짠 빗자루로 온 몸을 여러차례 후려 치며 견디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강물 속에 뛰어 드는 과정을 반복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우리나라 사우나에 가서 냉온탕을 반복하는 것처럼 짜릿한 쾌감이 등골을 스친다. 그러나 한 여름이라 망정이지 한 겨울 같았으면 정말 그 높은 온도차이로 인해 심장이 얼어 붙을 지도 모를 일이다.

  

∎ 시베리아 여행가이드 = 시베리아 횡단철도 열차여행의 필수품은 골프공, 수저포크, 시계, 슬리퍼, 뚜껑있는 스텐레스 물컵, 물휴지 등이다. 기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며칠을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골프공은 화장실 세면대 (사진) 물마개가 없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특성상 물막이용으로 아주 제격이다. 뚜껑있는 스텐레스 물컵은 흔들리는 기차에서 커피나 나눠주는 뜨거운 물을 받아 마시는 데 꼭 있어야 한다. 핸드폰이나 스마트폰을 가져간다면 충전기도 반드시 챙겨야 한다. 인천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주2회 대한항공(화)과 아시아나항공(금)의 국적기가 번갈아 뜬다. 오지여행 전문여행사인 마중여행사(사장 김창원)이 ‘민족의 시원 바이칼’이라는 주제로 비정기적으로 관광객을 모집한다. 비용은 블라디보스톡~이르쿠츠크 구간 2박3일 기차이동이 포함된 전체 8박10일 일정이 1인당 300만원내외. 항공편을 이용한 인천~이르쿠츠크간 직항 3박5일 일정은 비수기(5,9월) 때 1인당 170만원, 성수기(6~8월)때 200만원 이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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