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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오순애 이메일 newway919@gmail.com
작성일 2013-06-03 조회수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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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애 문화칼럼] '러브 마릴린'
 
러브마릴린
 
 
'제1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2013.5.24~5.30)에서 몇 편의 주옥같은 영화를 보았다.
15회 동안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초창기 영화제부터 참여해 온 사람으로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페미니즘'(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해방구였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는 슬로건은 가부장적이 사회구조속에서 비주류에 속한 여성들의 통찰으로, 사회 곳곳의 약자들의 시선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영상과, 학술세미나와 대화의 장으로 해마다 마련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고민을 함께하는 남성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배우, 섹스 심볼로 더 유명해진 '마릴린 먼로'(1926~1962)가 사망하진 5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세상은 그의 죽음과 사생활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동안 '마릴린 먼로'에 대한 책이 1,000권이 넘게 발간되었어도 그에 대한 조명이 제대로 된 책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러브 마릴린'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영화 '러브 마릴린'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 '리즈 가버스'에 의해 탄생되었다.
'마릴린 먼로'가 생전에 썼던 일기와 편지, 그림, 시 등이 사후 50년만에 최초로 공개되었다.
감독은 이를 바탕으로 엘리자베스 뱅크스, 글렌 클로즈, 린제이 로한, 우마 서만 등의 현재 여배우들이 '마릴린 먼로' 의 話者가 되어 스크린에 등장한다.
'마릴린 먼로'는 싱글맘에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성장했다. 가난한 현실과 성적학대를 탈피하고 싶어 16세 어린나이에 결혼하지만 2년만에 헤어진다.
1947년. 그는 배우가 되고 싶었으나, 사진작가에 의해 모델로 발탁이 되고 누드모델이 계기가 되어 첫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 입문하게 된다.
명랑쾌활한 성격인 그는 적극적으로 배우생활을 하는데, 빨리 성장하고 싶은 그의 전략은 자신의 육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할리우드에서 명성을 쌓으면서 자신의 초기 전략이인 섹스심볼에서 탈피에 연기파 배우로서 자리매김하고 싶어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남성중심적인 미국사회와 영화판은 그를 섹스심볼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이후,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결혼한다. 1953년 '나이가가라 폭포'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되어 '7년만의 외출'의 주인공을 맡는다.
그의 성공가도에 비해 가정생활은 평탄하지 못한다.
남편 조 디마지오는 그가 가정생활을 충실히 하기 바란다. 자신의 아내가 집에서 요리 하고 아이를 양육하기만을 원하는 보수적인 사람이다.
'마릴린 먼로'의 사진중 가장 유명한사진은 지하철 송풍구에서 나오는 바람을 막기위해 치마를 누르는 모습이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따라 하며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영화 '7년만의 외출'(1955)의 영화 속 장면을 찍기위해 연출된 그 장면에서 수많은 취재진들과 인파가 모였는데, 그의 남편 조 디마지오는 촬영장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못마땅한 표정이 화면에 비친다. (순간 관객들을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 영화 촬영을 계기로 '마릴린 먼로'는 조 디마지오와 두번째 이혼을 한다.
'마릴린 먼로'는 진지한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코미디와 육체파 배우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기지도를 받고, 클래식에 심취하고 때때로 자신의 심정을 기록하고 미국의 유명한 극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한다.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아서 밀러는 지적인 면모와 반대되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인물이었다.
촬영장에서 '마릴린 먼로'가 멍청하고 실력이 없다며 폄하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아 '마릴린 먼로'는 심한 상처를 받는다.
그 당시할리우드의 유명한 제작사 20세기폭스사도 마릴린 먼로를 성적인 배우로서 상품화시킬려고만 했지 진정한 배우로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한 영화 클레오파트라의 성적이 부진하자 그것을 '마릴린 먼로'가 다른 영화에서 잘못한 것으로 뒤집어 씌우는 전략을 꾀했다.
그당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출연료는 백만달러였고, '마릴린 먼로'의 출연료는 10분의1인 10만달러에 불과했다.
이렇듯 남편과 제작사들은 '마릴린 먼로'의 내면을 보지 않고 쾌락과 상품의 대상으로 철저히 이용하고 폄하하기만 하였다.
'마릴린 먼로'는 더 똑똑해지고 싶어하고 더 깊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었으나, 여러가지 장애물로 인해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우울해지고 약물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그를 치료한 정신과 의사조차 '마릴린 먼로'가 상담해 오면 오직 자신만의 환자로 만들고자 처방전을 남용했다고 그의 친구들이 증언했다. 그러나 그가 떠난 후였다.
'마릴린 먼로'는 감성적이고 따뜻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일기장에 그는 언제나 '혼자' 였다고 써 있다.
그는 남성들의 모략과 전략적 선택에 의해 괴로와 했고 외로워했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으나 정신과 의사는 오히려 그를 부추기고 단절시켰다.
그가 적은 편지와 일기를 통해 그리고 그림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더 그리워 할 것이다.
그가 떠난 50년 만에..
영화가 끝나자 사람들이 많이 운 모습이다.
그리고 그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미국사회와 남성들의 억압에 분노했다.
아름다운 여성 '마릴린 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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