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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4-19 조회수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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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식 소장. “평화, 정의, 통일로 가는 지름길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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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식 소장. “평화, 정의, 통일로 가는 지름길 열자!”
                              -‘대륙으로 가는 길’은 연구와 실천을 병행하는 국민운동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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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기자 생활 25년에 국제부장과 정치부장을 거쳐서 드디어는 신문사의 꽃이라고 하는 편집국장까지. 와, 대단하다. 이후엔 정계로 진출하여 민주당 강북을 17, 18대 국회의원이 됐다. 우리 연구소 최규식 소장의 이야기다.
 
3.24일은 우리 연구소에 특별한 날이다. 그동안 공석으로 있던 [대륙으로 가는 길]의 소장으로 최규식님이 착좌한 날이기 때문이다. 최규식 소장은 오랜 기자생활과 17.18대 의원을 지낸 중량감 있는 인사다. 필자는 지난 주 금요일(4.11일) 오후 2시 반에 최규식 소장을 ‘대륙으로 가는 길’ 사무실에서 만났다. 최규식 소장에 대해 그동안 궁금했던 점이 뻥 뚫리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지금부터 최 소장과 인터뷰 하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본다.
 
인상은 듬직해 보였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듯 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상대방이 쫄 수도 있는 근엄한 풍모도 풍긴다. 그러나 곧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면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며 공감의 장단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정확한 전달력과 성의를 다하는 답변에서 오는 긍정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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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소감과 연구소와의 인연
 
 
먼저 취임소감과 ‘대륙으로 가는 길’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해주십시오. “우리 연구소 ‘대륙으로 가는 길’(이하 대륙)은 정동영 고문을 빼놓고는 말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분과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숙명적인 인연이 있지요. 같은 초,중,고 대학 1년 선배입니다. 정계입문도 정동영 고문의 권유에 따라서 이루어진 일입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정동영 고문은 명실상부한 남북문제 전문가 아닙니까? 남북한 통일문제에서 정동영 고문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 연구소 면모도 그렇습니다. 국내의 그 어느 단체나 연구소라 할지라도 현역 국회의원 34명이 호응해준 곳은 없었습니다.” 최규식 소장은 연구소가 발기할 때부터 참여했다고 한다. “소장 직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은 작년이었지만 개인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응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올해 다시 제안을 받고 보니 “따르는 게 맞는 길, 옳은 길이라 여겼지요.”하는 데서 진중한 각오도 묻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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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으로 가는 길’이 지닌 가치와 한반도의 운명
 
 
연구소의 성격이나 지향점과 가치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우리 연구소가 지닌 가치는 대단합니다. 평화, 통일, 정의를 추구하여 남과 북이 통일로 가는 길에 기여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단순한 학술연구단체에서만 그치진 않을 겁니다.” 최소장은 실천적인 대안 제시를 병행해나가면서 차근차근 접근할 계획임을 내비치고 있었다. 필자도 덩달아서 연구소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었다.
 
우선 정부와 민간인 할 것 없이 남북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디딤돌로 해서 남북 철도를 만주와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연결해야 한다. “분단의 섬에 갇힌 한반도는 대륙으로 가야 한다. 우리들의 미래가 여기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최소장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미국의 세계적 금융기관인 골드만삭스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상반된 보고서를 들여다보면 이해가 간다.
 
왜냐면 우리 한반도문제를 남북한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아갈 경우 골드만삭스는 한국 경제가 2040년에 영국, 프랑스, 독일을 추월하고, 2050년에는 미국 다음으로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런가 하면 OECD는 2031년이 되면 한국경제의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상반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때문에 ‘대륙으로 가는 길’의 몫은 우리 민족이 번영하고 상생하는데 필요한 비전 제시라 생각된다. 길은 항상 열려있다. 하지만 길에는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할 길이 있다. 세계경제대국 1,2,3,4위와 무력강대국 1,2,3,4위에 둘러싸여있는 세계 유일무이한 분단국가가 우리 한반도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 ‘대륙으로 가는 길’은 바로 이런 문제를 고민한다.
 
최규식 소장의 말은 계속됐다. “정 고문이 통일부장관 재직 시에 개성공단을 열었다. 사실 갖은 우여곡절을 뚫고 이뤄낸 쾌거였잖은가? 이 개성공단은 원래 2천만 평 토지에 2.000개 공장이 들어서고 50만 인구가 생활하는 첨단 공업도시로 구상한 거다. 계획대로 실현되면 그야말로 남북한이 상생하는 것이고 그 자체가 성공적인 경제협력이 되는 판이다. 이를 토대로 실질적인 통일로 한 발짝 씩 내딛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가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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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내부의 내실화와 우선 과제
 
 
연구소가 발족된 것은 지난 2012년 11월로 알고 있습니다. 다수의 현역의원이나 정치인들이 참여하고 있으나, 연구소가 보다 힘 있는 단체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활성화와 회원배가, 창의적이고도 매력적인 사업아이템 등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소의 힘을 키우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강화해야 할 점은 무엇이며 이를 이루기 위한 실천방법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현역 국회의원들이 34명이나 대거 참여한 단체는 우리 ‘대륙’ 말고는 일찍이 유례가 없습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일이겠습니까? 국민을 위하는 정치인이라면 민족문제에서 결코 비켜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규식 소장은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대륙’의 운영과 조직 면에서 하루 속히 기반을 다지고 싶은 것이 소장으로서의 소망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우선 현역의원들의 참여의식을 이끌어 들이기 위한 방안도 필요하고, 연구소와 회원 상호간에 친밀한 교감도 중요하단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소에서 발신하는 정보지 같은 것도 구상 중이라고 했다.
 
나아가서는 진보적인 학자, 시민운동가, 정치인, 남북문제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정의,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단체가 되어 사안 별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끌어내어 나아갔으면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면 “사실 우리 ‘대륙’은 정치조직의 성격도 있다. 정치에 뜻을 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들이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연구소가 나서서 안내역할이며 안착할 수 있도록 최선 다할 것이다.”라는 점을 밝혔다.
 
최규식 소장으로서는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대륙으로 가는 길’의 실질적인 리더인 정동영 상임고문을 보좌하면서 한반도의 통일비전을 가다듬고 발전시켜 모두 함께 상생 발전하는 목표에 소홀함이 없도록 할 사명감이 지대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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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과 보람과 좌절 그리고 새로운 각오
 
 
정계에 입문하신 동기와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25년 했습니다. 신문사의 꽃이라고 하는 편집국장에까지 올랐고요.” 그러던 어느 날 정동영 고문으로부터 정계입문을 권유 받았다고 한다. 정동영 고문은 열린 우리당 의장이 되기 전에 ‘인재영입위원장직’을 맡고 있으면서 사회 각처에서 인재를 영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출마 제의를 받고서 고민을 많이 했다. 우선 아내가 “정치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말리는 바람에 결단하기가 어려웠다. 편집국장에서 물러나더라도 후에 논설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을 내던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정동영 고문이 삼고초려를 하면서부터 흔들렸다. 힘든 결정이었다. 하지만 결정을 하고나자 아내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어서 일이 잘 풀렸다. 17대 때 당선된 것은 물론이고 18대 선거 때는 서울 48개 선거구에서 민주당 쪽에서는 단 7명이 살아남은 경우였으니까.
 
그런데 18대 임기 말기에 황당하고도 억울한 사건에 휘말리게 됐다. 청원경찰들의 처우개선을 위해서 노력한 일 때문이었다. 일은 경찰과 똑같이 하면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박봉에 시달리는 청원경찰의 임금을 조금 인상하고 정년을 1년 연장하는 내용의 '청원경찰법 을 발의해 본회의에서 반대 1표 없이 통과시킨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청원경찰들로부터 연말에 전액 세액공제되는 10만원의 소액후원금을 받은 것이 빌미가 됐다. 공식후원계좌로 입금이 되고 청원경찰 개인별로 영수증 처리가 되고 중앙선관위에 신고도 됐지만, 청원경찰들이 후원금을 한데 모아서 가져 온 것을 받은 것이 법 규정에 위반된다는 것이었다.
  
재판 결과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 출마를 결행할 수 없었다. 당에 누를 끼칠 수 없어서다. 19대 때 불출마를 하게 된다. 이일은 선거가 끝난 후에야 항소심 판결이 나서 비로소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족쇄기 풀렸다. ‘선고유예’로 판결이 났다. 판결 요지는 처벌할만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의원생활 중에서 보람 있었던 점과 취미생활이며 근황을 얘기해주십시오. “일주일에 한 번씩 대학 강의를 나가고 있고요. 의원 생활 중에서 보람 있었던 일은 ‘북 서울 꿈의 숲’을 조성한 일입니다.” 최규식 소장은 재임 중에 뚝섬유원지에 버금가는 ‘북 서울 꿈의 숲’을 조성한 얘기를 하면서 유난히 환한 미소로 말을 이어갔다. 사람들은 처음엔 그곳에 학교, 종합병원, 대형쇼핑센터 등을 짓자는 의견으로 분분했다. 공원부지로 묶여 있어 용도 외 사용 의견은 탁상공론에 불과했다. 이런 곳을 최규식 의원은 강북 유일의 대형 시민공원으로 조성하는데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 관철시켰다. 이곳이 행정구역상으로 강북구 번3동에 위치한 북서울 꿈의 숲'이다.
 
최규식 소장은, 의원직에서 물러나온 후 다섯 차례 외국여행을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밖에서 보는 대한민국에 관해서 생각을 하며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자신의 행보는 무엇일까 돌아보기 시작했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가 처하고 있는 지정학적인 역학구도도 따져봤다. 
 
 
맺으며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는 IMF 빚을 다 갚지 못한 상태에서 또 다시 '국가파산' 위기론이 나오는데도 정부나 국민들 표정에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채무탕감을 배짱있게 요구한다. 땅덩어리가 넓고 자원이 엄청나 대외 무역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급자족이 가능하니까 경제 제재가 크게 두렵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외국과의 무역거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처지에 대외채무를 갚지 않고 버티다가는 경제 제재로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남들보다 몇 십 배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정치인의 책임이 막중한 이유다.
 
나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놓인 처지를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분단현실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를 빨리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북의 경제협력과 평화교류가 더더욱 촉진돼야 한다. 최소장의 시야는 냉엄한 현실을 꿰뚫으며 ‘대륙으로 가는 길’을 찾아 번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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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출가한 딸 덕분에 8살,5살,2살 먹은 외손자들의 재롱을 볼 수 있다는 최규식 소장이다. 지루한 공방은 끝났다. 19대 국회의원에 불출마 하게 된 원인도 제거된 만큼 부인과 함께 가끔 영화 관람을 즐길 정도가 됐다고 한다. 바로 지금이다. 최규식 소장은 이제 주어진 일에 일로매진(一路邁進)하는 일만 남았다. 우리 ‘대륙으로 가는 길’ 소장 직을 수락한 최규식 전 의원께 힘찬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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